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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9 조천면 1. 조천리 조천리는 1874년(고종 11년) 제주목사 이복희가 제주목의 좌면을 신좌면과 구 좌면으로 분리한 이후 줄곧 신좌면(당시 9개리)의 면소재지였다. 1914년 행정구 역 통폐합 당시 웻개로 불리던 신흥리가 분리됐고, 1935년 들어 신좌면은 조천 면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조천리는 본동과 빌레못 일대의 신안동, 양대못 일대의 양천동, 오름밧 일대의 봉소동의 4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졌다. 또 본동은 침낭 거리 일대의 상동, 처남골 일대의 중상동, 비석거리 일대의 중동, 깅이동네 일대 의 하동으로 구분된다. 일제강점기인 1919년, 제주지역 독립만세운동이 조천지역에서 처음 시작된 것 에서 알 수 있듯이 조천리는 항일독립운동가를 많이 배출한 독립운동의 중심지였 다. 해방 후에는 이들 항일운동가들 중 많은 이들이 건준과 인민위를 중심으로 활 동을 벌이며 4·3의 중심마을이 됐다. 조천 출신 4·3활동가로는 제주도 인민위원 장과 남로당제주도당 위원장을 역임했던 안세훈을 비롯해 김시범, 김시탁, 김유 환, 김은환과 무장대 총책 이덕구, 그외 많은 인사들이 있다. 조천리에서는 4·3 시기 많은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조천지역에서 여론을 주도 하던 조직 중에 조천중학원이 있었다. 1946년 3월 설립된 조천중학원은 다음해 인 1947년 3월 1일, 관덕정 마당에서 발포사건이 벌어지고 미군정이 도민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