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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9 안덕면 9. 서광리 서광리는 일제강점기 초기 면사무소가 위치하고 있었던 안덕면의 중심 마을이 었다. 그러나 안덕면사무소는 일주도로가 개설되고 경제 중심이 해안마을로 옮겨 지면서 1935년 감산리로 이전됐고, 그 후 서광리는 제주도의 평범한 중산간 마 을의 하나로 남게 됐다. 4·3 시기 서광리는 1구(현 서광 동리)와 2구(현 서광 서리)로 나뉘어져 있었다. 1구에는 건곤동과 관전동을 합해 150여 호, 2구에는 진부동과 사수동을 합해 160여 호의 주민들이 살았다. 현재 관전동은 4·3을 거치면서 초토화돼 잃어버린 마을로 남아 있다. 4·3 기간 서광리에서 첫 인명 살상은 1948년 8월 2일에 발생했다. 이날 밤 8·25 지하선거를 위해 백지서명을 받던 무장대원 2명(그중 1명은 서광리 출신임) 이 경찰에 총살됐다. 그 후 많은 인명피해는 다른 마을들과 마찬가지로 1948년 11월 중순 소개령이 내려진 이후부터 발생했다. 다음은 4·3 기간 서광리에서 발 생한 주요 사건이다. 1948년 11월 6일: 군토벌대가 이영구(37, 남)와 조여진(26, 남)을 일과리 가시오 름 부근에서 총살함. 당시 함께 붙잡혔던 이영구의 동생 이문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