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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2025년 4월 Special Theme 광복 제80주년 기념 특집 ‘일제하 사회주의운동과 한국독립운동’ 1930년대 초 동부 전남지역에서 조선공산당재건 전남동맹은 조직적 성과를 보였다 조선공산당재건전남동맹은 지역단위 전위조직으 로 출범했던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이조직은 여수, 순천과 광양, 구례 등지에서 주로 활동을 전개했다. 핵심 구성원이던 정충조는 단독으로 마산, 부산, 대 구, 서울까지 상경하여 조직사업을 전개했다. 여수지역의 경우를 보면, 이른바 1932년 ‘여수적 색노동조합준비회’가 조직된 이래로 여수의 각 노동 부문에는 거의 편한 날이 없었다고 할 만큼 노동쟁 의가 빈발했다. 이 조선공산당재건전남동맹은 ‘혁명적 노동조합 건설운동’을 지도했다. 구체적으로 1933년 8월 18 일 여수운수노동조합들의 동맹파업을 지도했다. 이 동맹파업의 원인은 노동자들이 제기한 탄원서의 요 구를 거부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외형상의 이 유이고 이미 ‘여수적색노동조합준비회’ 시절부터 여 수지역의 노동운동은 상당히 혁명화되어 있었고 이 조직의 활동이 파업투쟁으로 늦게나마 성과를 본 것 이었다. 이밖에도 여수지역에서 조선공산당재건전남동맹 은 여수수산학교 내에 반제동맹 조직을 두었고, 천 일고무공장에도 조직원을 파견하여 노동자 파업투 쟁을 선동하였다. 그런가 하면 ‘제주도적색농민조합창립준비위원 회’를 외곽에서 지도하던 김두경과 정충조는 1933 년 8월 21일 만나 상호 지방정세를 보고하고, 조직 이론에 대한 의견의 일치를 보기도 하였다. 한편 조직의 확장을 기관지 배포망의 확대로 추진 한 조선공산당재건전남동맹은 기관지 배포망으로 광양, 영암, 나주, 부산 등지에 각각 김완근, 이창희, 김석훈, 조병섭 등을 파견했다. 특히 광양에서는 전 남노농협의회의 재건을 도모하던 김완근, 김지태 등 을 포섭했으며, 구례에서는 ‘구례농민지도부’를 조 직했다. 또한 조선공산당재건전남동맹은 수로(水路)를 통 1945년 8월 17일 광주에서 급히 상경하여 9 월 11일 서울에서 조선공산당을 재건한 책임 비서 박헌영(1900~1955, 위키피디아 제공) 1945년 9월 ‘조선공산당 중앙집행위원 회’가 발간한 팸플릿 「통일된 조선공산당 은 재건되었다!!」(소명출판 제공) 조선공산당 재건 사실을 뒤늦게 대대적으 로 보도한 『해방일보』 창간호(1945년 9 월 19일). 『해방일보』는 재건 조선공산당 의 기관지로 창간됐다(뉴시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