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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영월엄씨대종회보 42호 람도 당연히 먼저 떠오르는 역사적 사실(세조의 사약을 받고 청령포에 버려진 단종의 시 신을 당시 삼족을 멸한다는 위협을 무릅쓰고 영월호장 엄흥도공이 수습해 장례지낸 일)과, 그 때 엄충신이 한 말씀 위선피화오소감심(爲善被禍吳所甘心). 선한 일을하다 화를 입더라도 나는 이를 달게 받으리라!, 그 절규에 가까운 절구(絶句)를 어떻든 꼭 넣는다는 것이었다. 오대 종훈의 골격은 그리 하여 이의없이 채택됐다. 그리고 종무목표는 무엇보다 우리 엄씨 후손들 미래 인재를 육성하 는데 역점을 두자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수차례 회의 끝에 상호 회장님이 검토를 끝낸 5 대 종 훈과 대종회 종무목표가 완성됐다. 문제는 종가(宗歌)였다. 편집위원들 대부분 음악에는 조예(造詣)가 깊지 않았기 때문. 그런데 당초 이 엄문 종 가 문 제는 한국 1세대 최고 성악가 엄정행 교수에게 작곡과 노래 모두를 부탁한 터였다. 사실 상 마 음 놓고 있었는데 정행 교수가 위중한 수술을 받고 병원에 입원해 계시다는게 아닌가? 난감 했다. 어찌한담?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 이때 비장(秘藏)의 실력을 발휘하신 분이 바로 상호 회장님. 회장님은 우리한테는 한마디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매일 새벽 1시에 일어나서 새벽 4시까 지 핸드폰을 들고 우리 종가에 맞을 성 싶은 여러종류의 음원(音源)을 검색하셨다. 한 2 00여 곡(曲)쯤 들으셨단다. 그 일주일 뒤쯤! 회장님은 종가로서 이 곡(曲)은 어떻겠냐고 편집진에게 물어 보시는 것이 었다. 회장님이 종가에 적합한 곡(曲)을 발굴해 내신 것이다. 그 종가 음원을 공자의 81대손이 되는 공윤배 뮤지션에게 편곡. 편집을 맡기고, 연세 대 성 악과를 졸업한 뒤 네델란드 왕립음악원울 수료한 바리톤 김우진과 경희대 성악과를 졸 업한 뒤 이탈리아 도니체드 아카데미를 수료한 소프라노 유지혜가 공동으로 톤을 맞췄다. 편 곡과 편집, 그리고 성악가 선정과 녹음까지 모두 회장님께서 섭외. 제작 하신 것이었다. 금년 시향 대제 때 시조공묘역 야외에서 울려 퍼질 “영월 엄문의 노래”.는 그리하여 완성되었다. 작사. 작곡은 실은 회장님이 다하셨는데 작사자와 작곡자는 굳이 우리 ‘엄문 일동’으로 하시자 고 고 집하셨다. 오는 10월 21일 영월에서 우리 종가의 합창이 벅찬 감동으로 다가오리라. 기 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