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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9 제주읍 신한 주민들을 체포하거나 확인할 때마다 소개하여 생활하던 그 가족들을 도피자 가족이라며 외도지서 서쪽밭 등지에서 학살했다. 구체적 사례는 다음과 같다. 1949년 1월 20일: 윤기훈(36, 남)과 그 가족 4명이 외도지서 서쪽밭에서 총살됨 (외도리-학살터-외도지서 서쪽밭, 참조) 2월 12일: 고성휴(50, 남), 김병언(49, 남)과 그 가족들, 이춘전(49, 여) 등 7명이 도피자 가족이라며 외도지서 서쪽밭에서 총살됨 도평리 주민들은 몇 달 후인 1949년 5월 초순께 하동에 성을 쌓고 복귀했다. 그 러나 하동 이외의 마을 주민들은 하동에서 함바집을 짓고 몇 년을 더 살고 나서야 자신들의 마을로 돌아갈 수 있었다. 현재 도평동에서 4·3희생자로 정부가 인정한 사람은 모두 152명(남성 119명, 여성 33명)이다. 1) 잃어버린 마을 <웻벵디(瓦坪洞)> 가. 소재지 제주시 도평동 1112번지 일대 나. 개요 웻벵디는 원래 ‘기와를 굽던 마을’이라는 의미로, 4·3 시기 10여 호의 주민이 살 고 있었다. 웻벵디는 도평리 6개 자연마을 중 비교적 중산간 마을에 속해 주민들 은 사라마을과 함께 1948년 11월 20일께 소개해 상·하동 등지로 흩어져 살았다. 그러나 웻벵디 주민들은 토벌대의 1949년 1월 3일 함정토벌 후 소개 명령으로 다음날 다시 외도 등지로 소개해야 하는 이중의 아픔을 겪었다. 그 후 마을은 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