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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8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1948년 5월 1일: 이원백(57, 남, 도평리 선관위원장), 박형종(25, 남, 대청단원) 이 마을에서 무장대에 피살됨 6월 8일: 강일천(18, 남)이 토벌대의 총격을 받고 입원치료 중 다음날 사 망함 10월 30일: 고경순(57, 남) 등 3명이 외도리 짐동산에서 토벌대에 총살됨 (외도리-학살터-짐동산, 참조) 12월 31일: 김도규(60, 남), 김두선(37, 남)은 토벌대가 이날 도평국민학교 에서 도평 주민들을 집합시킬 당시 학살됨 1949년 1월 3일, 도평리 함정토벌사건이 벌어졌다. 외도지서 경찰과 특공대원 으로 구성된 토벌대는 무장대로 위장한 뒤 1월 2일 저녁 작전에 들어갔다. 이 위 장토벌대는 이날 무수천 부근에서 무장대와 조우했으나 붙잡지 못했다. 그러자 아침녘에 도평리를 포위하고 진입해 들어가 주민들을 도평국민학교로 집합시켰 다. 이 과정에서 강순옥(19, 여)과 이정숙(연령 미상, 여)을 체포했다. 토벌대는 이 들에게 장옷(壽衣)을 입히고 학교로 끌고가 주민들 보는 앞에서 얼음이 언 연못에 처박으며 고문했다. 그리고 이들이 무장대로 위장한 토벌대라는 것을 알아차린 김성규(47, 남)와 양경하(23, 남)를 총살했다. 그 뒤 주민 일부를 도피자 가족이라 며 하원천 근처 뒷밭에서 총살하고, 청년들을 외도지서로 연행했다. 이때 연행된 청년들은 이날 저녁 연대마을 입구 외도지서 서쪽밭(외도동–학살터–외도지서 서 쪽밭, 참조)에서 총살됐다. 이날 외도지서로 연행돼 총살당한 도평 주민은 확인된 인원만 강문병(35, 남), 김병준(32, 남) 등 77명이다. 1월 4일에는 도평리 민보단장 최형언(31, 남)이 연행된 청년들에 대해 알아보려 고 외도지서에 갔다가 무장대 관련자로 몰려 외도리 중뜨르에서 총살당했다. 한편, 함정토벌사건을 벌인 토벌대는 철수하며 주민들에게 하루 기한을 주고 해 안지역으로 소개할 것을 명령했다. 곧 주민들은 외도리와 내도리 해인마을로 소 개했다. 이 과정에서 이미 도평리 상·하동으로 소개했던 사라마을, 와평동 주민들 은 또다시 해안지역으로 소개해야 하는 아픔을 겪었다. 토벌대는 주민들이 소개 한 후 도평 모든 마을을 불태웠다. 도평리 주민에 대한 학살은 소개지에서도 계속됐다. 토벌대는 소개하지 않고 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