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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4 제주4·3유적 Ⅱ _ 서귀포시편 “밥은 큰넓궤에서 하지 않았어요. 근처에 작은 굴들이 많았는데 주로 거기서 며칠에 한 번씩 해서 밥을 차롱에 담았다 먹었어요. 또 물은 삼밧구석의 소 먹이는 물을 항아 리로 길어다 먹었어요. 밖에 다닐 때는 발자국이 나지 않게 돌만 딛고 다니거나, 마른 고사리를 꺾어다가 발 디뎠던 곳에 꽂아 발각되지 않게 했죠. 똥도 밖에 나가서 누지 못 했어요. 굴 한쪽을 변소로 정해서 거기에다 변을 보도록 했지요. 하동 사람들은 아랫굴 에 살았고, 상동 사람들은 주로 윗굴에 살았어요. 그러다 보니 상동 사람들은 변소가 있 는 굴까지 가기 힘들어 항아리에 쌌다가 나중에 한꺼번에 버리곤 했지요.” 동광주민들은 큰넓궤에서 40~50여 일을 살았다. 토벌대도 집요하게 추적을 계 속했다. 토벌대가 마침내 굴을 찾아냈고, 곧 굴 안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청년들은 노인과 어린아이들을 굴 안으로 대피시키고 굴 입구 절벽 너머의 방어 용 돌담 뒤쪽에 이불이며 솜 같은 탈것들을 모아 고춧가루와 함께 쌓아놓고 불을 붙인 다음 연기가 밖으로 나가도록 푸는체(키)를 열심히 부쳤다. 토벌대는 굴속에 서 나오는 매운 연기에 굴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총만 난사했다. 그러다 밤이 되자 굴 입구에 돌을 쌓아 사람들이 나오지 못하게 막은 다음 철수했다. 토벌대가 간 후 근처에 숨어 있던 청년들이 나타나 굴 입구에 쌓여 있는 돌을 치 우고 주민들을 밖으로 나오게 했다. 그리고 주민들에게 다른 곳으로 피하도록 했 다. 굴속에 숨어 있던 사람들은 갈 곳이 막연했다. 그 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눈 이 많이 내려 허리 위까지 쌓인 눈더미를 뚫고 마땅히 갈 데도 없었다. 주민들은 달리 어쩔 수 없었다. 옷이나 신발 모두 변변치 않았지만 한라산을 바라보고 무작 정 올라갔다. 그러나 이들은 며칠 지나지 않아 모두 영실 인근 볼레오름 지경에서 토벌대에 발각돼 현장에서 총살되거나 서귀포로 끌려갔다. 그 후 서귀포로 간 이 들도 서귀포 단추공장에 갇혔다 모두 정방폭포나 그 인근에서 학살됐다. 다. 현황 큰넓궤는 도너리오름(돌오름)에서 남쪽으로 약 650m 떨어진 동광리와 서광리 경계 부근에 위치해 있다. 큰넓궤가 4·3유적지로 널리 알려지고,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최근 굴 입구에는 안내판이 세워지고 주변이 정비됐다. 현재 큰넓궤 와 도엣궤는 제주특별자치도청에서 안전과 보호를 위해 출입을 통제하고 있어 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