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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6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은 “나는 10월 29일 고성리에서 잡혀 외도국민학교로 끌려갔어. 우린 거기서 하 룻밤을 보낸 후 다시 월대 위쪽으로 해서 도평 지경 소나무밭까지 끌려갔지. 이날 도평, 상귀, 고성 주민 48명이 죽었어. … 나는 총알 한 방이 손바닥을 스쳐가고, 다른 한 방은 팔꿈치를 관통했지만 살아났어. 기적이었지. 전날 우린 군인들에게 잡혀와 경찰에 인계됐어. 시신 처리는… 그날 오전 9시께 우릴 다 쏘아 죽였는 데… 오후 다섯 시가 지나자 가족들이 소문을 듣고 와서 모두 찾아갔다고 해”라고 증언했다. 짐동산에서는 이후에도 1948년 12월까지 주민 학살이 계속됐다. 현재 확인된 희생자는 모두 30명이다. 다. 현황 당시 학살이 이루어진 장소는 무수천에 인접한 냇가로 상수원 보호구역이다. 현 재 소나무가 울창하고 남서쪽으로는 외도 제2축구장이 위치해 있다. 옛 모습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올레길 17코스가 옛길을 따라 지나간다. ⑤ 너븐밧 가. 소재지 제주시 외도1동 나. 개요 너븐밧은 이름 그대로 넓은 밭이 있었던 곳이다. 토벌대는 1949년 1월부터 4 월까지 하귀리 주민 1명, 외도리 주민 11명 등 모두 12명을 이곳에서 학살했다. 1949년 1월 15일: 홍성준(25, 남)은 하귀국민학교 교사였음. 학습자료에 문제가 있 다는 이유로 학살됨 1월 16일: 김귀현(67, 여) 일가족 3명은 무장대 가족이라며 학살됨 1월 19일 / 1월 24일: 김필순(21, 남) 등 6명은 이유도 모른 채 토벌대에 학살됨 4월 15일: 장봉화(58, 여), 윤창화(29, 여)도 무장대 가족이라며 학살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