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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6 제주4·3유적 Ⅱ _ 서귀포시편 2월 7일: 강군옥(33, 남)·이인선(32, 여) 부부와 자녀 강○○(4, 여)·강○ ○(2, 남) 4명은 토벌대에 발각돼 체포된 뒤 행방불명됨 동광주민들은 1949년 봄, 서광 동리가 복구되자 서광 동·서리 주민들과 함께 서광동리 성 안에 임시 거처를 마련해 몇 년을 살았다. 동광리의 복구는 면의 지 원을 받아 1953년도에 이루어졌다. 당시 면에서는 동광 주민들만이 아니라 안덕 면 주민들을 대거 동원해 중간 마을인 간장리에 성을 쌓도록 도와줬다. 주민들은 성을 쌓고 나서 다음 해 4월께 입주했다. 현재 동광리에 당시 쌓았던 성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다. 현재 정부가 인정한 동광리 4·3희생자는 172명(남성 102명, 여성 70명)이다. 1) 잃어버린 마을 ① 무등이왓 가. 소재지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226번지 일대 나. 개요 무등이왓은 300여 년 전에 설촌된 동광리의 중심마을이다. 마을 형성 초기 주 민들 대부분은 관에 쫓기던 사람들이었는데 이들은 이곳에 숨어 화전을 일구며 살았다. 무등이왓이라는 지명은 지형이 ‘춤을 추는 어린이(舞童)를 닮았다’는 데서 나왔다. 일제 시기인 1939년에 무등이왓에는 2년제인 동광간이학교가 건립됐는 데 이 학교는 감산리에 있었던 안덕공립보통학교를 제외하고는 이 지역 유일의 교육기관이어서 창천, 서광, 덕수, 상천 등지에서는 물론 중문면 색달리에서도 학 생들이 취학했었다. 4·3 시기에는 130여 가호의 주민들이 살았던 규모가 큰 마을 이다. 제주도의 잃어버린 마을 총 122곳 중 가장 큰 마을이었던 무등이왓은 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