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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4 제주4·3유적 Ⅱ_ 서귀포시편 동광리에서 첫 사망 사건은 1948년 4월 22일에 일어났다. 당시 동광리 대동청 년단 단장이면서 선거관리위원을 맡고 있던 신송(52, 남)이 집을 수리할 재료를 구하러 갔다오다 무장대에게 살해됐다. 그 이후 11월 중순 중산간 마을이 초토화 되기 이전까지 동광리에서는 큰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 1948년 7월 10일: 단국중학교 학생이었던 신영만(22, 남)이 7월 7일 하귀리 처갓 집으로 이주했다 토벌대에 연행된 뒤 총살됨 10월 미상일: 고언구(31, 남)는 광령리에 집을 지으려고 준비하던 중 동광리 가 위태롭다는 소식을 듣고 가족들을 데리러 나간 뒤 행방불명 됨 11월 5일: 광평 출신 이신송(55세 추정, 남)이 동광리 여성과 생활 중 토 벌대가 마을을 급습하자 피신하려다 토벌대에게 사살됨 동광리는 그간 불안 속에서도 비교적 조용히 지냈는데 11월 15일 마을에 소개 령이 내려진 다음부터는 수시로 학살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토벌대는 소개령 직 후부터 불시에 마을에 들이닥쳐 피신생활을 하던 동광리 주민들을 찾아내 학살했 다. 이런 상황은 1949년 2월까지 계속됐다. 1948년 11월 15일: 토벌대(군인)가 마을을 급습해 주민들을 무등이왓에 집합시킨 뒤 강군봉(51, 남)을 비롯한 10명을 호명한 뒤 강귀봉 댁으로 끌고가 총살함. 토벌대는 이날 간장리 10여 호를 모두 불태움 (아래 학살터–최초 학살터, 참조) 11월 18일: 무장대가 마을에 나타나 강위상(76, 남, 강군봉 부친)을 데려가 려 하자 이를 막는 과정에서 강위상의 사촌 동생 강위하(57, 남)·이득춘(65, 여) 부부가 피살되고, 강신학의 후처였던 이화 봉(32, 여) 역시 마을 안에서 살해됨 11월 21일: 무등이왓 주민 강경생(42, 남)은 부인 김해득(36, 여)·아들 강 창호(12, 남)와 함께 해안마을로 소개하기 위해 짐을 싸고 안덕 지서에 근무하는 사촌매제 고순경을 기다리던 중 무장대에 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