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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3 안덕면 8. 동광리 동광리는 4·3 시기 현재의 동광 육거리를 중심으로 무등이왓(130여 호)과 조수 궤(10여 호), 사장밧(3호), 간장리(10여 호), 삼밧구석(45호)의 5개 자연마을로 이 루어진 중산간 마을이었다. 1948년 11월 중순 이후 중산간 마을에 대한 토벌대 의 초토화작전이 실시되면서 마을은 모두 파괴됐고, 많은 주민들이 희생됐다. 현 재 동광리는 동광초등학교를 중심으로 한 간장리만이 복구돼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동광리에서는 4·3이 발발하기 이전인 1947년 8월 8일, 제주도지사 유해진이 강 하게 밀어붙이던 강제곡물수집정책에 마을주민들이 반대해 무력충돌을 빚은 성출 반대사건이 발생했다. 이날 동광주민 50여 명은 하곡수집 독려차 이장집에 머물 고 있던 공무원들을 상대로 마을할당량을 조정해줄 것을 요구하다가 언쟁 끝에 공 무원 3명을 집단구타했다. 이 사건으로 마을 청년 3명이 체포돼 실형을 선고받기 도 했다. 1 사건 후 동광리는 같은 사건이 발생했던 명월리와 함께 미군정이 주시하 는 마을이 되어 수시로 경찰이 들락거렸고, 그럴 때마다 주민들은 숨기에 바빴다. 1) 이 사건에 대해서는 ‘제주4·3제50주년기념학술·문화사업추진위원회, 『잃어버린 마을을 찾아서』, 학 민사, 1998’의 동광리편과 ‘제주4·3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 서』, 2003, 135쪽’을 참조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