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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1 제주읍 형무소에 수감됐다가 1950년 1월 12일 옥사했다. 이완영의 장남 이장희는 토벌 대에 귀순한 뒤 풀려나 외도리에서 생활했으나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예비검속 후 행방불명됐다. 한편 외도 주민들은 1960년 4·19혁명 직후 국회에 양민학살조사반이 구성되 자 이 사건을 신고했다. 이에 『제주신보』는 이 사건을 양민학살 관련 정식 고발 제1호라 보고 크게 보도하기도 했다. 다. 현황 현재 절뒤로 추정되는 곳에는 외도동 택지개발 후 공영주차장과 아파트, 다세 대 주택들이 들어서 있어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외도동 주민들 역 시 학살이 이루어진 위치를 특정하지 못했다. 2005년 조사에서는 절뒤1과 절뒤 2로 나눠 정리했으나 이번 조사에서는 두 지역이 서로 다른 곳이 아닌 것으로 판 단돼 하나로 합쳐 정리했다. 절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