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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제주읍 주민 2명이 외도지서 서쪽밭에서 총살됨 1949년 1월 3일: 강문병(35, 남) 등 도평리 주민 65명과 광령리 주민 1명, 상귀 리 주민 1명, 하귀리 주민 1명이 외도지서 서쪽밭에서 총살됨 1월 17일: 김봉옥(65, 여) 등 화북리 주민 9명과 김이배(55, 남) 등 북촌리 주민 2명이 도그내에서 총살됨 1월 24일: 강재생(29, 여) 등 하귀리 주민 6명이 외도지서 서쪽밭에서 총 살됨 2월 12일: 고성휴(50, 남) 등 도평리 주민 6명이 외도리 몸팟에서 총살됨 한편 중산간 마을 주민들이 소개해 내려오기 시작한 1948년 11월 중순 이후 무 장대의 침입에 대비하고 지서를 지키기 위해 마을 주변에 성을 쌓았다. 축성에는 외도 주민은 물론 소개민들 모두가 동원됐다. 현재 성터 흔적이 전혀 남아 있지 않지만, 외도2구는 월대천부터 옛 장터 윗 지경을 따라 연대마을 입구 조금 못 미 친 곳까지 ‘ㄱ’자 형태로, 내도는 ‘┍ ‘ 형태로 성을 쌓았고, 외도1구는 자체적으로 1구만을 두르는 성을 쌓았다. 이때부터 외도 주민들에게도 시련이 닥치기 시작했 다. 청년들은 토벌대의 명령에 따라 60여 명이 특공대를 조직해 지서에서 보초를 서거나 토벌대의 토벌 때 길안내를 해야 했고, 여성들은 토벌대의 식사를 마련하 느라 곤욕을 치렀다. 외도 주민들에 대한 학살도 이어졌다. 외도 주민 중 최초로 희생된 사람은 고영 주였다. 고영주는 1948년 6월 11일 밭일을 하러 가던 중 경찰의 검문 소리를 듣 지 못해 사살됐다. 1948년 12월 26일에는 김일순(25, 남)이 동생 결혼식에 참석 했다가 집합 시간에 늦었다는 이유로 응원경찰에 총살당했다. 1949년 1월 6일에 는 무장대가 9연대가 철수한 틈을 타 외도리를 습격했다. 무장대는 외도국민학교 를 방화하고, 주변 가옥을 습격해 김갑생(35, 여)과 그 자녀 2명을 살해했다. 이후에도 외도리 주민들은 토벌대와 무장대 사이에서 끊임없이 희생됐다. 그 가 운데 가장 큰 비극은 이완영 일가족 학살사건이었다. 토벌대는 이완영(40, 남)과 이장희(24, 이완영의 아들)가 도피했다는 이유로 그 가족 12명을 외도리 절뒤에 서 학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