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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2 제주4·3유적 Ⅱ _ 서귀포시편 런 과정에서 다른 마을들처럼 집단학살은 없었지만 주민들 대다수가 토벌대에 체 포돼 희생됐다. 특히 1949년 1월 27일 상천리 돌오름에서는 토벌대에 많은 주민 이 학살됐다. 돌오름은 상천리와 주변 마을 주민들이 피신 생활을 하던 장소였다. 이날 확인된 희생자만 상천리를 비롯해 상창리, 창천리, 감산리 주민 19명에 이 른다. 1 이외 주요 사건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948년 11월 29일: 김기석(51, 남)이 소개하지 않고 마을에 남아 있다 토벌대에 발 각되어 총살됨 12월 2일: 고완재(69, 여)가 딸의 집에서 생활하다 토벌대가 지른 불을 피 하지 못해 사망함 12월 5일: 김호선(17, 남)·김권하(16, 여) 남매가 소개하지 않고 마을 근 처에 숨어있다 토벌대에 발각돼 김호선은 현장에서 사살되고, 김권하는 안덕지서로 끌려가 고문을 당한 뒤 총살됨. 이날 피신 생활을 하던 김기선(46, 남), 현기학(36, 남)·현무형(16, 남) 부 자 역시 토벌대에 발각돼 총살됨 12월 18일: 중문리로 소개했던 백유생(48, 여)은 연설이 있으니 모이라는 말에 딸 정무선(8, 여)·정수선(5, 여)·정이선(2, 여)을 데리고 중 문지서로 감. 그는 남편 정태옥이 12월 15일 총살됐다는 말을 듣고 항의하다 중문리 신사터에서 딸들과 함께 총살됨 (중문 리–학살터–신사터, 참조) 1949년 2월 16일: 김광춘(53, 여)·진재문(24, 남) 모자와 박중근(18, 남)이 2월 11 일 피신생활 중 토벌대에 발각돼 중문지서로 연행됨. 이들은 이 날 상예리로 끌려간 뒤 토벌대의 강압을 받은 상예리 주민들에 1) 당시 마을별 희생자는, “상천리(2명) - 김옥두(32, 남), 양○○(20, 여, 홍을삼 부인) / 창천리(7명) – 김병민(26, 남)·강원중(24, 여)·김병민 딸(6, 여)·김병민 아들(4, 남) 가족, 김팔석(18, 여)·김평선(15, 여)·김평화(8, 여) 등 김병민 동생 / 상창리(9명) - 유여옥(45, 여)·강우진(15, 남)·강순자(7, 여)·유여 옥 아들(2, 남) 가족, 김자출(48, 여)·이춘선(16, 여) 모녀, 강술(42, 여)·오경태(13, 남)·오재천 아들(5, 남) 모자 / 감산리(1명) - 오언송(68, 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