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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2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인 외도, 이호, 도두 주민은 물론 인근 마을인 도평, 광령 주민들까지 선거거부를 위해 해안리 지경으로 피해왔다. 이들은 주로 해안마을 남쪽의 붉은덩어리 주변 에 마을별로 야영을 하며 2~3일을 지내다 내려갔다. 이때 해안리 주민들도 그곳 에 움막을 짓고 3일 정도 살다 내려왔다. 조용하던 마을이 뒤숭숭해지기 시작한 것은 가을 무렵부터였다. 1948년 11월 1일 밭에서 일하던 송창률(21)이 토벌대에 붙잡혀 총살됐다. 그 후 주민들은 밭 에 일하러 갔다가 토벌대가 온다고 하면 목장에 숨는 일을 반복했다. 토벌대는 주 민들에게 19일까지 소개하라고 명령했다. 곧 주민들은 연고자를 찾아 외도나 이 호, 도두로 소개했다. 토벌대는 소개민들이 해안마을로 소개한 직후인 11월 20일 마을을 모두 불태웠다. 당시 해안마을에 연고자가 없거나 소개가기를 꺼려했던 사람들은 마을 주변 여 기저기 숨어 살았다. 토벌대는 마을 주변을 샅샅이 수색하면서 벌판이나 굴에 숨어 있던 사람들을 찾아 학살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12월 7일, 토벌대는 곰궤에서 주민 20여 명을 학살했다. 이 사건은 해안 주민들이 집단 학살된 가장 큰 사건이다. 곰궤에서 학살 사건이 벌어지기 전에도 해안리 주민들은 여기저기서 희생됐었다. 1948년 9월: 김두식(27, 남), 토벌대가 아라리 산천단 인근으로 끌고간 뒤 총살함 10월 13일: 고경환(47, 남), 자기 밭에서 고구마를 수확하던 중 토벌대에 총살됨 11월: 문재의(40, 남), 식량을 가지러 해안리 집에 가던 중 토벌대에 체포돼 노형리 초남동산에서 총살됨. 김자선(25, 여)과 그의 딸 (2, 여)은 무장대에 납치된 뒤 피살됨 해안주민들은 소개지에서도 많은 고충을 겪었다. 소개 당시 일부 주민들은 도평 리로 소개했었다. 그러나 1949년 1월 4일 도평리가 소개하면서 이곳에 갔던 해안 마을 사람들은 또다시 다른 마을로 소개해야 했다. 외도리, 도두리 등지로 소개한 이후에도 주민들의 희생은 계속됐다. 외도지서, 도두지서에서 주민들을 끌고 간 뒤 총살하는 사건이 수시로 벌어졌다. 또한 무장대에 의한 희생도 계속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