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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2025년 4월 Special Theme  광복 제80주년 기념 특집 ‘일제하 사회주의운동과 한국독립운동’ 에 병으로 사망했다. 한빈은 부산에 가서 지역의 공 장노동자를 중심으로 조직운동을 했다. 그는 1930 년 3월 체포되었다. 고경흠(高景欽)은 상하이에서 양 명, 한위건과 협의하여 1931년 2월 국내로 들어왔 다. 그리고 고경흠은 권대형, 이종림, 서인식 등과 조 선공산당재건설동맹을 조직했다. 이 조직은 1931년 4월 조선공산주의자협의회로, 조선공산주의자재건 협의회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들은 기관지 『콤뮤니 스트』를 발행했다. 1930년대 초 대표적인 당재건운동기 조직으로 조 선공산주의자협의회는 협의회의 통제 아래 전국적 조직망을 구축하고자 했다. 이른바 전남노농협의회 는 조선공산주의자협의회의 지역 조직으로 하나로 볼 수 있다. 이 전남노농협의회는 어떻게 조직되었는가. 1927 년 김상혁, 이우적, 이병호, 권대형은 일본 도쿄 유학 중에 고려공산청년회 일본부, 제3차 조선공산당 일 본총국에 입당하여 활동했다. 이들은 1928년 5월 사 건이 발각되자 일본 경찰의 체포를 피하려고 1929 년 7월 전후에 조선에 돌아왔다. 지리산을 중심으로 전전하면서 이우적은 경남 산청군 삼장면 대원 사(大 源寺)에, 김상혁은 전남 곡성군 죽곡면 태안사(泰安 寺)에 숨었다. 이들은 공산주의운동을 약속하고 헤 어졌다. 그리고 광주, 목포 등지에서 조직 재건을 통 해 전남노농협의회는 책임 비서 김호선, 조직부 김 호선, 김백동, 그 산하로 노동부 김기선, 농민부 윤승 현, 반제부(反帝部) 김준수가 구성되었다. 이 조직은 노동 · 농민 · 반제운동에 주목했다. 실제로 전남노농협의회는 전남지역의 당재건운동 조직으로 임시사무국과 광주노동조합이 중심이 되 어 15개 전남지역 운동 단체를 규합했다. 참가 단체 17개는 담양적농(赤農)지부, 보성적색농민부, 벌교 면위원회, 광주적색농민조합준비위원회, 독서회, 농 민문제연구-농민획득동맹, 사회과학연구회, 광주노 동조합, 반제동맹, 전남농민조합, 적노(赤勞)준비위 원회재건위원회, 우산민풍진흥회-농민조합, 노동자 획득동맹, 독서회, 적색노동조합준비위원회, 사회운 동연구회 등이었다. 전남지역 당재건운동의 지역 조직이었던 전남노 농협의회는 조직의 조직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전남노농협의회 반제부 위원 고재휴 (1910~1948, 국가보훈부 제공) 조선공산당재조직중앙간부 한빈 (1901~?, 국사편찬위원회 제공) 조선공산당재건설동맹 간부 고경흠 (1910~?, 제주일보 제공) 조선공산주의자협의회 책임 비서  양명 (1902~?, 국가보훈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