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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 제주4·3유적 Ⅱ_ 서귀포시편 통이 됐다. 11월 20일께에는 자경단이 조직됐다. 이 자경단은 다른 곳의 민보단 과 비슷한 조직으로 그 후 마을 중심조직이 돼 마을을 지켜나갔다. 당시 자경단은 동동네(1소대)와 섯동네(2소대), 상동네(3소대)에 각각 1개 소대씩 총 3개 소대로 구성됐다. 1개 소대는 30명씩 편성돼 단원 전체는 약 100여 명에 이르렀다. 총괄 대대장(혹은 중대장으로 지칭했다 함)은 김인택이었고, 1소대장은 오춘생, 2소대 장은 송영부, 3소대장은 김웅인이었다. 조직 후 이들은 마을 순찰을 돌고 보초를 서며 무장대 습격에 맞서 마을을 지켜나갔다. 다음은 마을 주민들의 주요 피살 기 록이다. 1947년 4월 28일: 강대형(30, 남, 대정국민학교 교사)은 3·1사건 관련한 성명서 를 발표하고, 3·10총파업에 참가한 혐의 등으로 1947년 4월 28일 제주지방심리원에서 징역4월 선고를 받음. 그 후 그는 일 본으로 밀항해 살다 1962년 5월 10일 사망함 11월 2일: 박성우(20, 남)는 경찰이 자신을 검거하러 온다는 말을 듣고 도 망가다 제주조각공원 근처에서 총살됨 11월 5일: 김성오(17, 남)를 비롯한 8명이 곰박이동산에서 철도경찰 오학 룡부대에 학살됨 (아래 학살터-곰박이동산, 참조) 11월 6일: 송윤옥(33, 남)은 이틀 전 안덕지서 축성에 동원됐다 이날 총살 됨 (화순리–학살터–신사터, 참조) 11월 9일: 이영표(26, 남)는 토벌대가 마을 남자들을 집합시키고 질문할 때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는 구실로 총살됨 11월 미상일: 주신생(37, 남)은 11월께 마을 성문보초를 서다 마을에서 소 도 난사건이 발생하자 경찰에 연행된 뒤 행방불명됨 12월 6일: 김성용(32, 남)을 비롯한 10명이 보초를 서다 섯동네로 들어 온 무장대와 교전 중 사망함 (아래 학살터-섯동네, 참조) 1949년 1월 24일: 김봉호(24, 남, 안덕면사무소 임시직원)는 제주읍에 안덕면 호 적복구를 위해 출장을 다녀오다 타고 있던 차량이 애월면 고내 리의 고내봉 근처에서 무장대의 기습을 받고 사망함. 당시 이 사건으로 모두 10명이 희생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