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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8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학생, 야간에는 여학생이 다녔고, 교사로 양항부, 양항봉, 양만수 등이 근무했다. 노형국민학교는 해방 후인 1946년 개교하면서 학교 부지와 교사는 친진의숙이 사용하던 것을 그대로 이어 받았다. 당시 학교 규모는 500평 부지에 교사(校舍)는 초가집 5칸 정도 규모(3개 교실 크기)의 건물 1동과 재래식 화장실이 있었다. 그 러나 노형국민학교는 1948년 11월 26일 함박이굴이 초토화되면서 교실 3개도 불에 타는 피해를 입었다. 4·3의 와중에 학교에 응원경찰이 주둔하면서 주민들은 낮에는 토벌대, 밤에는 무장대에게 시달려야 했다. 김희인(1920년생, 남)은, “4·3 때 학교는 종종 군주둔 지가 되거나 무장대의 집회 장소가 됐지. 그럼 수업은 물론 출근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거야. 나도 외도동으로 도망가다시피 했어. 나중에 군청에서 노형교 의 소개교를 도두교로 정하면서 노형교는 1949년 3월 15일자로 폐교 명령이 내 려졌지. 그때 학교 직인도 당국에 반납해야 했어”라고 증언했다. 3 한편, 노형초등학교는 1953년 4월 1일 현재의 위치인 노형동 2610-1번지의 부지를 매입하고, 6년제 3학급 인가를 받아 동년 4월 10일 개교해 지금에 이르고 노형국민학교 옛터 3) 『잃어버린 마을을 찾아서』, 1998, 15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