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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4 제주4·3유적 Ⅱ _ 서귀포시편 김안준(47, 남), 오만검(46, 남), 장수남(40, 남)·장순보(15, 남) 부자, 진구항(42, 남)·진영두(20, 남) 부자들이 소개지 마을 경비에 참여했다 무장대에 살해됐다. 이 날 무장대를 따라 산에 올랐던 주민들도 돌오름 등지에 피신해있다 토벌대에 발각 돼 총살되는 등 많이 살해됐다. 소개령 이후 주요 사건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49년 1월 8일: 강상수(20, 남)와 김달종(53, 남)·이신생(48, 여)·김원봉(17, 남) 가족이 도피자 가족이라며 안덕지서로 연행된 뒤 총살됨 (화순 리–학살터–신사터, 참조) 1월 17일: 소개하지 않고 남아 있던 이행문(66, 남) 일가족이 토벌대에 발 각돼 중문지서로 끌려가던 중 이행문이 잘 걷지 못하자 총살됨. 이행문의 부인 조남출(59, 여)과 자녀 이정하(33, 남)·진신출(28, 여) 부부, 이매성(19, 여), 이창욱(15, 남)은 1월 20일 총살됨 1월 22일: 지난해 12월 29일, 감산리와 창천리를 습격한 무장대를 따라 산으로 올랐던 김원수(22, 여)와 오여붕(52, 남)·강봉향(48, 여) 부부, 오재기(46, 남)·진규향(48, 여)·오두석(17, 남)·오천석(10, 남) 가족이 토벌대에 붙잡혀 정방폭포에서 총살됨 (서귀리–학 살터–정방폭포와 소남머리 일대, 참조) 1월 27일: 무장대가 마을을 습격. 보초를 서던 문규태(32, 남)와 진흥예 (54, 남)가 사망하고 오달원(46, 남)이 부상당함. 무장대의 권유 로 산에 올랐던 강술(42, 여)·오경태(13, 남)·강술의 아들(5, 남) 모자와 김자출(48, 여)·이춘선(16, 여) 모녀가 이날 돌오름에서 토벌대에 발각돼 총살됨 상창리 복구는 다음해인 1949년 5월께 이루어졌다. 당시 성은 안덕면민들의 협조를 얻어 향사를 중심으로 사각형으로 쌓았다. 성에는 망루도 있었고, 군데군 데 총구도 설치됐다. 그러나 처음 쌓은 성은 너무 좁아 그 후 늘려 쌓을 수밖에 없 었다. 현재 당시 성의 흔적은 모두 헐려 조금도 남아 있지 않다. 현재 정부가 인정한 상창리 4·3희생자는 모두 92명(남성 72명, 여성 20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