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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1 제주읍 들이 다녔다. 월랑은 별도로 빌렛동네에 명신의숙(빌렛학교)을 세웠다. 명신의숙 은 제주읍과 월랑마을 두 군데에 설립돼 있었다. 4·3 시기 명신의숙에는 응원경찰이 주둔했다. 그러나 이들이 어느 시기에, 어느 정도 규모로 주둔했었는가 하는 사실은 자료가 없어 잘 알 수 없다. 노형 주민들 은 주둔 경찰의 뒷치닥거리에 골머리를 앓았다. 이들에게 식사나 부식을 제공하 는 문제와 마실 식수를 대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이들이 봉천수를 먹을 수 없다 고 해서 주민들은 도두리까지 내려가서 생수를 떠다 바쳐야 했다. 대접이 소홀하 다고 동네 구장이 구타당하는가 하면, 여자들은 남편의 행방을 추궁당하며 서청 의 행패에 시달려야 했다. 1948년 11월 19일, 20일 토벌대가 월랑마을을 불태울 때 명신의숙도 불에 타 없어졌다. 다. 현황 현재 명신의숙 자리에는 애육어린이집이 들어서 있다. 명신의숙 옛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