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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7 제주읍 나. 개요 바게밧은 1949년 1월 22일 토벌대가 기습해 이곳에 숨어있던 숫자 미상의 아 이들과 노약자를 무차별 총살했던 학살터이다. 당시 이곳에서 학살된 희생자는 강승언(71, 남) 등 23명이다. 당시 노형주민 일부는 초지였던 이곳 바게밧에 땅을 1m 정도 판 후 둘레에 돌 을 쌓고, 지붕은 띠풀을 덮어 살고 있었다. 이런 움막은 눈이 많이 내렸던 당시에 도 주민들이 그런대로 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었다. 이날, 토벌대는 바게밧 동쪽으로 올라왔다. 그런데 메아리 때문에 주민들은 총 소리가 서쪽에서 들리는 줄 잘못 알고 토벌대가 올라오는 동쪽으로 도망쳤다. 토 벌대는 무차별 발포했다. 증언에 따르면 어린이고 노인이고, 보이는 사람은 다 쏘 아죽였다고 했다. 3개월 난 현상지의 아들은 팔이 노끈에 꼬아지듯 꼬인 채 죽어 있었다. 토벌대가 아기의 팔을 잡고 휘두르다 던져버렸기 때문이다. 이날 가족 일곱을 잃은 현상지(1930년생, 남)는, “소개 내려간 이호리 호병밧에 서 큰형님 총살당하고, 다시 큰가름으로 소개갔는데, 소개민들 몇 사람을 뽑아서 공개총살하는 것을 봤어요, 아버지가 ‘어차피 죽을 거면 불칸 터로 가서 밥이라도 배불리 먹고 죽자’ 하시면서, ‘가자’고, 했어요. 그때 산에서 온 사람들도 ‘다 올라 갑서. 일주일만 강 고생허민 살 길이 있습니다’하며, 우리를 올려보냈어요. 피난 민 열댓 세대가 가메통에 움막 짓고 산지 이틀쯤 되는 날, 채 밝기도 전에 팡팡팡 소리가 나요.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정신이 없었죠. 이제 좀 지나니 총소리도 안 들 리고 조용해지더군요. 어머니를 만나 가족들을 찾기 시작했어요. 아버지와 할아 버지는 배염나리 아래 냇바닥에 떨어져 처참하게 죽어있었어요. 조카 두 명은 누 운오름에서 창에 찔려 죽어있었고, 동생은 배에 철창을 맞았는데 목숨은 붙어 있 었어요. 결국 동생은 그날 저녁에 죽었죠. 형수님은 찾지 못했어요. 할아버지, 아 버지, 조카 두 명, 동생을 임시로 묻어두고. 어머니와 함께 월산 위 굽은동산 쪽으 로 우린 올라갔죠”라고 증언했다. 당시 임시 시신 수습은 마을자위대에서 했다. 시신이 있으면 옆에 구덩이를 살 짝 파서 굴린 다음 묻고 흙을 덮어주는 식이었다. 당시 자위대원이었던 양중화 (2003년 72세, 남)는, “숫자는 잘 모르겠어요. 그 작업을 이틀 반 했으니까… 몇 십명은 되었겠죠. 아이들까지 다 그렇게 해주었어요. 시신은… 내가 6·25에 참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