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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2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다. 현황 현재 개아진이는 모두 과수원으로 변해 옛 모습을 찾기 힘들다. 당시 이곳이 마 을터였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는 것은 돌담 사이로 듬성듬성 자라난 대나무뿐이 다. 2003년 조사 당시 모습 그대로이나 주변 도로는 확장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2) 잃어버린 마을 Ⅱ 월산마을은 두 번 소개되는 아픔을 겪었다. 1949년 봄 정존마을에 4·3성이 둘 러지자 월산 주민들도 정존성 안에 거처를 마련했다. 1950년 봄, 시국이 조금 평 온해지자 월산 주민들은 마을을 재건해도 된다는 당국의 허가를 받았다. 약 100 세대의 주민들이 일주도로 아래 쪽 새빌이에 성을 쌓고 함바집을 지어 거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생활도 오래 가지 못했다. 1차 복구해 입주한 1년 6개월 후인 1951년 가을께, 다시 소개명령이 내려졌다. 이호2구가 무장대의 습격을 받 자 이호2구보다 윗마을은 소개해야 한 다는 명령이었다. 1955년 봄, 4·3이 끝나자 당국은 월 산마을 재건을 허가했다. 그러나 1차 복 구 때와는 달리 주민들은 많이 올라오지 않았다. 약 7년 동안의 타향생활로 이곳 저곳에 정착한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이 다. 당시 고향으로 돌아온 가구는 19가 호에 불과했다. 해방 전의 156가구와는 비교도 안 되는 적은 수로, 그 후 월산마 을에 잃어버린 마을이 많아지게 된 주된 이유이기도 하다. 다음은 월산마을회관 입구에 세워진 표지석의 비문이다. 월산마을 4·3성(『노형동』,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