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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제주4·3유적 Ⅱ _ 서귀포시편 담리-학살터-제주비행장, 참조) ▶ 두 서귀면장의 학살 현직 서귀면장 송문희와 강성모에 대한 토벌대의 학살은 새삼 4·3의 의미를 되 새기게 한다. 송면장은 재직 당시였던 1948년 11월 7일 무장대의 서귀포 기습 이후 토벌대가 무장대 협조자를 색출한다는 명목으로 주요기관 책임자들을 연행 해 소남머리에서 총살할 때 학살됐다. 강성모도 현직 면장으로 군부대의 과도한 민폐에 항의했다 한국전쟁 초기 군부대에 예비검속된 후 행방불명됐다. 서귀면 주민들은 강성모 면장을 해병대의 고사리 공출을 거부했다 희생됐다 하 여 ‘고사리 면장’으로 기억하고 있다. 1960년 국회 양민학살 진상조사 당시 강성 모의 아들 강희철이 제2호로 접수한 ‘서귀포 주민 강희철(강성모의 자)이 당시 해 병대사령관 신현준 중장 등 2명을 제주지검에 고발한 건’에서 그는, 자신의 부친 이 서귀면장으로 있을 때 ‘군인들이 민간인을 고사리 캐는 일에 동원하는 등 민폐 가 많아 시정해달라’ 요구한 것을 트집 잡아 1950년 7월 하순 해병대사령관 신 중장의 부하가 부친을 끌고간 뒤 지금까지 행방불명됐다’고 하며 억울함을 토로 했다. 한편 송면장의 아내 고열숙도 한국전쟁 후 예비검속돼 오일시장 옆 수용소에 수감됐다 제주국제공항에서 총살당했다. 고씨는 유해발굴에서 신원이 확인됐다. 두 분 면장과 그 가족의 학살은 왜 우리가 4·3의 진상을 규명하고 희생자들의 명 예를 회복시켜야 하는가 하는 원론적인 문제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다. 현황 현재 소남머리 일대에는 서복전시관이 들어서 있다. 중국 진시황의 사자로 왔 던 서복이 서시과차(徐市過此)라는 마애명을 남겼다는 전설을 토대로 이곳에 전 시관을 조성했다. 향후 이곳에는 정방폭포와 소남머리 일대 4·3 피학살자들을 위 한 위령탑과 추모공원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