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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8 제주4·3유적 Ⅱ _ 서귀포시편 통자를 찾는데 눈을 밝히고 있었다. 그러나 뭇매를 맞던 경찰관들은 뒤늦게 출동한 경 찰대에 의해 구출되었다. 이 사건을 두고 일부 자료에는 ‘서광리 경찰관 생매장사건’으 로 잘못 기록되고 있다.”1 전국적으로 2·7사건으로 기록되는 이 사건은 제주도에서도 사계리 이외에 고 산 등지에서도 발생했었다. 고산지서는 2월 10일 시위군중들을 해산하기 위해 발 포해 1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2·7사건 후 제주도에서는 대대적인 검거선풍이 일 었다. 사계마을 안에서 4·3으로 처음 희생된 사람은 조성훈(24, 남)이다. 토벌대는 밀 고로 얻은 정보를 토대로 그를 무장대 협조자로 의심하고 1948년 11월 4일, 처 갓집 상례를 치르던 그를 연행해 사계리 서대합실 서쪽밭에서 감산리의 김인철 (18, 남), 창천리의 강태흡(20, 남)과 함께 총살했다. 그 후 마을 주민들이 학살된 사건은 다음과 같다. 1948년 4월 13일: 민보단원 양석호(24, 남)는 수송을 담당해 토벌대원들을 태우 고 제주읍으로 가던 중 애월면 신엄리 근처에서 무장대의 기습 을 받고 사망함 11월 5일: 현주규(20, 남, 사계국교 교사, 법환리 출신)는 법환리 친척집 제사를 마치고 돌아오던 중 중문 어두머리 근처에서 무장대의 공격을 받고 사망함 11월 6일: 구창인(26, 남)을 비롯한 김성언(20, 남), 김성종(19, 남), 김용 주(23, 남), 이순학(21, 남), 임기호(23, 남), 임명호(32, 남), 정 두춘(24, 남), 허세호(23, 남) 9명은 안덕지서 성담을 마을순번 에 따라 동원돼 쌓던 중 토벌대의 호명을 받고 끌려간 뒤 안덕 지서 정문 앞에서 공개총살됨 (화순리-학살터-안덕지서 옛터 앞 삼거리, 참조) 11월 6일: 이태실(22, 남)은 안덕지서 정문 앞에서 총살됨 1)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2003, 14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