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5page

377 제주읍 겹기는 마찬가지였다. 주민들은 하나 둘씩 목숨을 잃어갔다. 1949년 봄 노형 주민들은 정존에 성을 쌓고 고향 마을로 돌아왔다. 그러나 월 랑, 월산, 광평 주민들은 쉬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월랑과 광평 주민들은 4~5년 간 정존성에서 생활을 하고 나서야 자신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① 함박이굴 옛터 가. 소재지 제주시 고사마루길 13 (노형동 2323번지) 일대 나. 개요 함박이굴(艦泊洞)이라는 마을 이름은, 마을 동북쪽에 함박이굴이 있기 때문에 붙여졌다고도 하고, 땅의 모양이 배가 정박한 모양과 같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 라고도 한다. 현재 일주도로에서 한라대학으로 진입하는 초입 서쪽 지역(현재, 늘 봄가든 주변)이 마을 옛터이다. 일제 때인 1920년 전후 이곳, 노형동 2350번지에 개량서당 형태의 친진의숙 (親進義塾, 함박이굴학교)이 세워졌다. 해방 직후인 1946년 4월 10일, 노형국민 학교가 친진의숙의 부지와 교사를 이어받아 인가됐다. 그러나 노형국민학교는 1948년 11월 26일 함박이굴이 초토화되면서 교실 3개도 불에 타는 피해를 입었 다. 당시 함박이굴에는 20여 가구의 주민들이 살고 있었으나 그 후 복구되지 않 아 폐촌이 됐다. 2 호주는 장락화, 문태봉, 문승만, 문승순, 문만갑, 김봉준, 현양호, 양계방, 이화 옥, 양신하, 양완실, 현일호, 양상옥, 양정일, 김덕수, 문용웅, 현창립, 현상문, 문 영택, 양찬식 등이다. 함박이굴 출신 4·3희생자는 강연파(80, 여) 등 28명으로 조 사됐다. 2) 『노형동』, 1996, 185쪽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