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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4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날, 웃한질(현 평화로)을 따라 동쪽에서 서쪽으로 넘어가던 9연대 병력이 월랑마 을을 지나 초남동산에 이르렀을 때 방일리동산에서 빗개(보초)를 서던 사람이 나 팔을 불면서 군대가 지나가고 있음을 알린 직후 방화가 시작됐다. 9연대는 월랑 마을 섯동네로 들이닥쳐 마을을 불태우고 주민들을 보이는 대로 쏘아 죽였다. 다 음날인 20일, 군인들은 다시 월랑마을을 기습해 시신을 수습하거나 가재도구를 꺼내고 있는 사람들을 연달아 학살했다. 이어 정존, 광평마을을 시작으로 노형리 모든 마을을 초토화시켰다. 이렇게 19일, 20일 이틀 동안 벌어진 9연대의 학살로 월랑마을 주민들만도 강민수(61, 남) 등 30여 명이 학살됐다. 노형마을이 불태워진 후 주민들은 이호, 도두 등 해안마을로 소개했다. 그러나 소개지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또 다른 죽음이었다. 1948년 12월 7일, 절단된 전주를 복구해야 된다는 명목으로 토벌대는 이호2구(속칭 오도롱) 주민과 그곳에 소개간 노형 주민들을 동원했다. 작업 후 토벌대는 노형에서 소개 내려온 강창호(37, 남) 등 13명을 호병밧에서 학살했다. 이어 토벌대는 가물개를 방화했 고, 주민들은 아직 불타지 않은 이호2구의 큰가름으로 소개했다. 1949년 1월 13일, 군인들은 큰가름에 있던 주민들을 이호국민학교에 집결시 켜 눈을 감게 했다. 그리고 밀고자에게 ‘손가락질’하도록 지시한 후 지목당한 사 람을 뽑아내 김금성(38, 여) 등 8명을 임이밧으로 데려가 총살했다. 토벌대는 이 날, 큰가름도 불태웠다. 도두리로 소개갔던 노형 주민들은 1949년 1월 12일과 14일, 22일에도 도두리 주민들과 같이 동박곶홈에서 학살됐다. (도두리-학살터- 동박곶홈, 참조) 이들은 대부분 도피자 가족들이었다. 1949년 1월 13일, 이호2구가 불에 타자 노형과 이호2구 소개민 일부는 이호1 구에 있는 판매소 창고에 임시거처를 마련했다. 그날 밤 무장대가 들이닥쳤다. 그 들은 “여기 더 있어서는 안 된다”며, 노형주민들을 산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이들 은 방일동산, 바게밧, 배염나리 등에 피난처를 마련했다. 며칠 후인 1월 22일, 토 벌대가 노형리 주민들이 숨어있던 바게밧으로 올라와 총을 난사해 주민을 학살했 다. 당시 이곳에는 주로 노인과 부녀자, 아이들이 머물고 있었다. 갑자기 들이닥 친 토벌대에 놀라 누운오름 쪽으로 도망쳤던 많은 사람들이 포위하고 올라오는 토벌대에게 붙잡혔다. 이날 20명이 넘는 주민들이 학살됐다. (노형리-학살터 바 게밧,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