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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3 제주읍 21. 노형리 노형리는 제주읍 서부 중산간 마을로 원노형, 월랑, 정존, 광평(너븐드르), 월산 의 5개 큰 자연마을과 다른 여러 작은 자연마을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4·3 시기 약 900여 가호의 주민들은 노형1구(월랑, 정존, 원노형)와 노형2구(월산, 광평, 함박이굴, 방일이, 개아진이, 드르구릉), 그리고 벳밧, 새동네(꿩이슬), 물욱이(수 옥동), 숙이못(석숙이못) 등의 마을에 산재해 살았다. 현재 노형과 해안의 2개 법정동을 관할하고 있는 노형동에는 택지개발로 인한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돼 예전 모습이 많이 사라지면서 상가, 아파트, 호텔이 즐비 하게 들어섰다. 동쪽으로는 연동, 서쪽으로는 무수천을 중심으로 애월읍과 경계를 이루며, 북쪽으로는 이호동·도두동과 이웃하고 있다. 어승생악의 정기로 많은 인 재가 배출되었다고 자랑하는 노형리는 4·3으로 인한 공식적 인명피해가 538명이 나 돼 163개의 제주도 마을 중 가장 희생자가 많은 마을로 나타나고 있다. 노형리 주민들이 4·3의 광풍을 체감하기 시작한 것은 1948년 5·10선거를 맞으 면서부터였다. 주민들은 인근 마을 주민들이 그랬듯이 5개 마을별로 투표를 거부 하기 위해 전날부터 주변 산야로 피신했다. 월산 주민들은 조리물로, 월랑·정존 주민들은 고냉이동산으로 가서 며칠 살다 내려왔다. 노형 주민이 집단으로 희생된 최초의 사건은 1948년 11월 19일 발생했다.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