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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0 제주4·3유적 Ⅱ_ 서귀포시편 으로 몰고 갔다. 다음은 마을 주민들이 학살된 사건이다. 1947년 3월 3일: 김무생(30, 여)·양덕칠(36, 남) 부부는 양덕칠이 3·1사건 관계 자로 지목되자 타지방으로 도피했다 행방불명됨 1948년 봄: 김홍식(22, 남)은 결혼 후 집에 있다 친구와 나간 뒤 상창리 병 각 지경에서 피살됨 6월 12일: 김홍영(16, 남)은 보초 근무 중 습격한 무장대와 싸우다 마을 솔대왓에서 살해됨. 이날 강운빈(24, 남)은 부친 장례를 치르다 안덕지서로 연행된 뒤 행방불명됨 10월 31일: 유인철(27, 남)을 비롯한 이재야(33, 남), 오봉운(21, 남, 미신 고자)은 무장대로 오인한 토벌대에 의해 화순리 개폭데기에서 총살됨 (화순리-학살터-개폭데기, 참조) 11월 4일: 김인철(18, 남, 대정중학생)은 형이 도피했다고 부친이 총살되 자 친구집에 숨어지내다 발각돼 학살됨 11월 13일: 김보경(48, 남)은 아들이 피신하자 도피자 가족이라며 학살됨 11월 22일: 고봉룡(27, 남)은 옆집 불을 끄고 돌아오다 경찰에 연행된 후 화순리 개폭데기에서 학살됨 11월 23일: 양을화(52, 여)는 밭에 가다 군인들 심문에 걸려 총살됨. 군인 들은 그가 3일 전 무장대에 납치된 아들에게 식량을 전달하러 가는 것으로 오인한 것으로 보임 11월 24일: 강경두(14, 남, 학생)는 지붕을 이을 새를 구하러 상창리 대난 도에 갔다오다 마주친 토벌대에 총살됨 11월 25일: 강신생(28, 남)과 고치룡(22, 남), 유치룡(27, 남), 이완진(27, 남)은 마을을 급습한 경찰에 연행된 뒤 화순리 신사터에서 창 천리 주민 3명과 함께 총살됨 (화순리-학살터-신사터, 참조) 11월 미상: 강치옥(31, 남)은 11월, 안덕지서에서 조사받고 나온 후 서울 로 피신했다 행방불명됨 12월 3일: 강병지(44, 남)와 강의환(51, 남), 강희로(23, 남)는 보초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