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1page
363 제주읍 1949년 1월 13일: 무장대가 이호리를 습격함. 토벌대는 주민들을 이호국민학교 에 집합시킨 뒤 일부 주민을 이호리 임이밧으로 끌고가 학살하 고, 갈왓과 큰가름에 불을 질러 이호2구를 초토화시킴. 이날 이 호리 주민 38명, 노형리 주민 2명이 학살됨 (이호리-학살터-임 이밧, 참조) 1월 14일: 김덕녀(26, 여) 등 7명이 토벌대에 연행돼 도두리 동박곶홈에 서 총살됨 (도두리-학살터-동박곶홈, 참조) 2월 20일: 김무송(74, 여) 등 5명이 토벌대에 연행돼 도두리 궤동산에서 총살됨 (도두리-학살터-궤동산 동녘밭, 참조) 이호2구 주민들은 마을이 완전 소각되자 연고를 찾아 이호1구나 도두, 외도 등 지로 흩어졌다. 연고가 없는 사람들은 이호1구의 판매소 창고에 거처를 마련했 다. 그러던 1949년 1월 13일 밤, 무장대가 기습하여 판매소에 있던 노형과 이호 2구 주민들에게 ‘더 이상 여기 있어서는 안 된다’며 산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그 후 이호2구 주민들의 삶은 노형주민들과 마찬가지로 바뀌었다. 마을 단위로 집단 을 이뤄 살다 토벌대가 올라오면 산으로, 산으로 올라가며 숨는 생활이 지속됐다. 그러나 이들도 몇 달 후인 3~4월께까지 모두 사살되거나 체포되기도 했고, 일부 는 자수하여 내려왔다. 이런 사람들 중에는 주정공장에 수용됐다 타지방 형무소 로 옮겨져 한국전쟁 직후 국군에 의해 학살되기도 했다. 한편 이호1구나 도두 등지로 소개한 주민들에 대한 학살도 이어졌다. 임이밧 학 살 외에도 도두지서에서는 수시로 소개민들을 학살했다. 그 대표적인 장소가 속 칭 동박곶홈으로 이곳에서 이호 주민들은 1948년 12월 27일과 1949년 1월 14 일에 많은 학살을 당했고, 그외에도 수시로 이곳에서 고초를 겪었다. (도두리-희 생터– 동박곶홈, 참조) 이호2구의 복구는 1949년 가을에 이루어졌다. 성은 현재 오도롱 마을회관을 중심으로 가물개를 빙 둘러 쌓았다. 성을 쌓기 위해 주변 밭담이나 눈에 보이는 돌은 모두 이용하느라 현재 제주도 민속자료로 지정돼 있는 골왓마을의 5개 방사 탑도 허물어야 했다(이 방사탑 중 2개는 민속자료 제8-4호와 제8-5호로 지정됨. 현재의 방사탑은 4·3 후 주민들이 다시 쌓은 것으로 원래 크기보다 훨씬 축소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