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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3 안덕면 불태워 없앴다. 그 후 산으로 올라갔던 도피자 가족들은 대부분 산속을 헤매다 토 벌대에 발각돼 목숨을 잃었다. 당시 김병민은 부모와 동생을 잃은 뒤 수용소에 갇 혀있던 가족들을 탈출시키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김병민도 다음 해 1월 27일, 상 천리 돌오름에서 토벌대에 발각돼 자신을 포함한 일가족 7명이 학살됐다. 강위영은 1949년 3월 안덕지서로 자수했다. 그는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예비검 속된 뒤 행방불명됐다. 그의 부친 강규빈(67, 남)은 1948년 12월 7일 도피자 가 족이라며 안덕지서로 연행되던 중 화순리 굴렁밭에서 총살됐다. 다. 현황 강위영 댁은 풍수상 제주도 3대 뱀바리 집터(뱀 형체로 내려온 집터를 말함)로 알려진 곳으로 당시 주택은 집터의 서북쪽에 위치해 있었다. 현재 집터에는 주택 이 한 채 들어서 있다. 원래 집터는 현재 있는 주택과 그 서쪽, 북쪽 밭 모두를 포 함한다. 옛 집이 있었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5) 주둔지 ① 통물파견소 (1차 경찰파견소) 옛터 가. 소재지 서귀포시 안덕면 창천리 404-4번지 일대 나. 개요 1948년 12월 창천리에 성을 쌓으면서 안덕지서 창천경찰파견소가 설치됐다. 경찰파견소가 처음 자리잡은 곳은 양금주 댁이었다. 양금주 댁은 상당히 넓은 부 지에 지어진 주택이었다. 집 안에는 목욕탕과 화단도 있었다고 한다. 경찰파견소가 설치되자, 주민들은 담을 성담처럼 높이 쌓아 건물 주위를 둘렀 다. 파견소 바로 앞에는 통물이라 불리는 물통이 하나 있었다. 그래서 주민들은 양금주 댁 파견소를 통물파견소라 부르기도 했다. 통물파견소는 약 1년 후에 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