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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2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50세 이상이 51명으로 어린이나 노인들이 거의 희생자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1948년 4·3 발발 이후, 이호리는 무장대와 토벌대의 연이은 습격에 하루도 편 할 날이 없었다. 처음에는 무장대가 우익단체원들을 공격하면 그 보복으로 토벌 대가 마을에 들이닥쳐 주민들을 학살하는 식이었다. 이러한 학살은 1948년 11월 중순, 중산간 마을에 소개령이 내려질 때까지 이어지는데 그 주요사건을 정리하 면 다음과 같다. 1948년 4월 6일: 무장대가 마을을 기습해 대동청년단 총무인 양남호(29, 남)와 대청단원 이도련(36, 남)을 학살함 4월 17일: 토벌대가 김대림(31, 남)을 자택에서 학살함 4월 20일: 김재집(37, 남), 고형종(42, 남)이 경찰에 연행됐다가 노형리 방 일리동산에서 학살됨 5월 7일: 김종림(49, 남)이 군인들에게 연행됐다가 노형리 밤낭굴에서 총살됨 11월 3일: 김희원(38, 남)이 무장대가 절단한 전신주를 복구하러 나갔다 가 토벌대에 총살됨 11월 26일: 전 구장 고두임(61, 남)이 자택에서 무장대의 습격을 받고 학살됨 1948년 11월을 전후해 이호2구 주변에서는 도로 차단, 전주 절단사건이 더 빈 번해졌다. 토벌대는 자연 이호2구를 주목하며 수시로 마을에 들이닥쳐 주민들을 학살하고 연행했다. 이 시기 이후 이호리, 특히 이호2구에 대한 토벌대의 주요 학 살사건은 다음과 같다. 1948년 12월 7일: 전날 전주가 절단되자 도두지서는 이호2구 주민(6명)과 노형리 소개민(12명)을 복구작업에 동원한 뒤 이호리 호병밧에서 학살 함. 또한 이날 가물개마을을 소개하며 김귀련(47, 남) 등 2명을 호병밧에서 총살함 (이호리-학살터-호병밧, 참조) 12월 27일: 고용선(25, 남) 등 9명이 토벌대에게 연행돼 도두리 동박곶홈 에서 총살됨 (도두리-학살터–동박곶홈,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