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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문 당시 나이 48세
약력
1934년 7월 9일 경북 의성에서 부친 이만욱님과 모친 김원남님 사이에서 차남으로 출생
1954년 3월 4일 경북대 법정대학 정치학과에 입학
1957년 4월 경북대 정치학과 4학년 재학 중 <영남일보> 견습기자로 입사
1958년 2월 경북대 졸업 후 1959년 <대구일보> 정치부 기자로 전직
1960년 5월 <대구일보> 사직 후 9월에 <통일민주청년동맹 결성에 참여
1961년 2월 15일 <민족일보> 창간과 함께 정치부 기자로 참여
1961년 5월 16일 군사쿠데타로 <민족일보>가 폐간되고 간부들이 검거되면서 수배
1963~1964년 영남일보사, 대구매일신문사 등에 기자로 근무
1964년 8월 <인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 65년 1월 1심에서 무죄, 65년 8월 집행유예 선고
1971년 4월 <민주수호국민협의회> 대구경북지부 운영위원 겸 대변인 역임
1974년 4월 <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으로 1급 수배를 당하여 지하활동에 돌입
1975년 4월 9일 <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으로 여덟 분이 사형을 당한 후 투쟁 조직을 구상
1976년 2월 29일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 결성, 서기에 추대
1979년 10월 4일 수배 속에서 민족해방과 반파쇼 민주화투쟁에 헌신하시다 공안기관에 체포
1980년 12월 23 일법정 투쟁을 다했으나 대법 최종심에서 법정 최고형인 사형 확정
1981년 11월 22 일모진 고문과 5·18학살 항의 단식 후유증으로 옥사
동지의 삶과 죽음
동지는 청년시절, 대구에서 신문기자로 활동하면서 4월혁명 공간 속에서 사회변혁을 위한 혁신운동, 통일운동을 하였다. 1961년 2월 <민족일보>가 창간 되자 정치부기자로 활동하였으나, 5·16쿠데타로 (민족일보>는 폐간되고, 동지 역시 수난을 겪었다. 이후 <인민혁명당> 사건으로 검거되어 투옥되는 등 고초를 겪었으며, 박정희 유신쿠데타가 발생하기 전까지 <민주수호국민협의회> 대구경북지부의 운영위원과 대변인을 역임하는 등 민족민주운동에 헌신하 였다. 유신 이후 <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으로 수배를 받아 피신생활을 하면서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를 결성하여, 서기로서 4년 가까운 기간 을 민족의 자주·민주·통일을 위해 투쟁하였다. 1979년 10월 박정희 유신독재에 반대하는 항쟁이 부산과 마산 등 각 지역에서 솟구쳤고, 민주화를 요구하 는 세력을 무차별적으로 탄압하는 와중에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 사건으로 검거되어 사형을 선고 받았다.
서울구치소에서 수감생활을 하면서도 5·18광주항쟁 소식을 접하고, 학살에 대한 항의단식을 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고문과 단식 후유증으로 발병하였으나, 전두환 독재정권이 치료를 허가하지 않아 1981년 옥중에서 운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