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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1 안덕면 출소한 후 행방불명됐다. 토벌대는 그가 행방불명되자 가족들을 도피자 가족 취 급하며 그의 집을 도피자 가족 수용소로 삼았다. 당시 장진봉 댁은 건물이 여러 채 있는 창천리에서 손꼽힐 정도로 큰 집이었다. 1948년 11월 하순, 안덕면 일대 중산간 마을에 소개령이 내려지자 창천리로 상 창리와 상천리 주민들이 소개해왔다. 토벌대는 소개민 가운데 가족이 한 명이라 도 없는 집안은 장진봉과 강위영 집에 수용했다. 장진봉 가족은 토벌대에 풍비박산됐다. 1948년 11월 24일, 마을 청년들과 함 께 피신했던 동생 장진병(27, 남, 이명 장진철)이 토벌대에 발각돼 사살됐고, 1949년 1월 8일에는 부친 장공수(62, 남), 부인 김춘지(38, 여), 딸 장동옥(15, 여), 동생 장진영(16, 여)이 안덕지서로 끌려간 뒤 화순리 신사터에서 총살됐다. 동생 장진선(19, 여)은 1949년 군법회의를 받고 형무소에 수감됐다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행방불명됐다. 다. 현황 현재 장진봉 댁은 개축돼 가족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장진봉의 딸 장동연(2004 년 63세)이 살고 있다. 장진봉 집터는 지금의 주택과 그 남쪽과 동쪽에 있는 과수 도피자 가족 수용소(장진봉 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