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倭敵이 횡행하고 변고가 비길 데 없자 병신을사정미년 사방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선생은 내가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방락이 없으니 나가서 공을 세우지 못할 바에야 초야로 들어가서 전후에서 지원하는 것은 더 낫지 않겠는가 하고 處而扶持 하였다 그리하여 병군자금을 여러 차례 지원하였다 의병이 계속 실패하자 자녀라 망하여 앞으로 사람이 금수가 될터이니 성인의 학문을 강론하고 밝혀 후생으로 하여금 三綱五倫의 이치와 尊中華攘夷의 義理를 알게 할수밖에 없다하고 戊申年 同門이요 의병 참모였던 廣庵 李圭顯을 초빙하여 子孫의 교육을 맡겼다 庚戌年 나라가 강제로 합병되자 大夫의 冠帶를 붙태우고 大聲痛哭한 후 自決을 시도하였으나 魯仲連의 비견된다 庚申年에 큰 흉년이 들자 이를 기회로 일제의 수탈이 자행되자 그 피해를 막기위하여 사재를 털어 百餘戶에 救恤米를 무상 배포하기도 하였다 丙寅丁卯年에 장자 壽永으로 하여금 恥齊 李敏應과 함께 재단법인 善隣會를 조직하여 식산주식회사를 설립하고 금융사업 빈민구제사업 육영사업 농촌진흥사업으로 畿東保隣社 창립등에 참여케하였다 庚午年 義菴柳麟錫휘하의 敗軍之將인 李奎顯과 李炳德을 은신시키고 그 가족들을 돌보아 주었다 선생은 原州邊正熙의 딸과 결혼하여 壽永을 낳았고 年間에 사별하여 再娶로 定婚한 安東權宅俊의 따님은 成婚 전에 死去하고 다시 安東權任鉉의 딸과 결혼하여 賴永 達永 孝永 麟永 叫永 五男과 二女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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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따님은 延日 鄭世澤과 完山 李明鎬에게 出家하였고 이하는 기록치 않는다 용문산화서연원 독립운동기념비에는 선생과 그 아들 壽永 賴永이 등재되어 있다 壽永의 長子 遇聖은 晩樂軒 門中 長孫으로 壬子年(1912)에 出生후 成長하여 學者이자 文人畵開拓者로 國立서울大學校의 美術大學創設要員으로 役割을 하였고 同大學에서 後進訓育에 專念 韓國近代畵團의 수 많은 人才를 養成하였고 藝術院終身會員을 歷任하고 銀冠및 金冠文化勳章을 授與 받았으며 京畿道 利川市에 그의 雅號인 月田을 倂記한 記念館과 利川市 建立 月田美術館을 2008년 建立하여 運營되고 있음은 表한바 백철비에 등재된 손자로 遇會는 보국훈장 광복장 遇載는 화랑무공훈장이 수여되었고 상이용사 遇時도 충무공훈장이 수여되었다 자손들이 대개 有能하고 餘裕가 있으니 선생의 끼친바라하겠다! 만락헌선생의 厚德과 斥邪大義외 家傳忠孝世守仁敬은 후세에게 귀감이 될것이다 만락헌공화수회에서 崇祖敦睦하는 마음으로 유허비를 세우기로 하였도다 宗人들이 誠金을 모으고 有志가 도웁고 玄孫 淇範이 터를 내놓았다 증손 敦睦교수가 不佞에게 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