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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7 제주읍 년 1월에 학교 명칭을 도두, 이호 두 마을을 합해 도리국민학교라 정했다. 무장대가 도두마을을 두 차례에 걸쳐 습격하여 마을을 방화하자 갈 곳이 없던 사람들이 학교 동녘밭에 함바를 짓고 살았다. 이곳에는 소개와 있던 이호2구와 노형 주민들이 함께 거주했다. 토벌대는 국민학교에 주민들을 집결시켰다 선별하여 길(일주도로) 건너 남쪽 동박곶홈으로 데려가 수차례 학살했다. 당시 남편을 동박곶홈에서 잃은 양자생 (2003년 80세, 여)이 당시 상황을 증언했다. “나는 친정이 하귀1리인데 19살 때 도두리로 시집왔어요. 4·3 당시 나는 25살, 신랑 은 26살이었죠. 신랑은 일본에서 공부하고 있어서 나도 결혼해서 일본에 가서 살았어 요. 이까이노에 3년간 살다 전쟁이 나자 제주도로 돌아왔죠. 귀향하고 한 달 정도 있자 해방이 되었을 거예요. 그런데 난… 사태를 만나 신랑을 잃고, 하나 있던 아들도 열병으 로 잃고… 지금까지 혼자 살아왔어요. 남편은 일본에서 오랫동안 살아 한국말을 잘 못했어요. 남편 이름이 장두욱인데… 돌 아가신 날이 음력 동짓달 초하루예요. 아침에 서청부대원들이 동네 사람들을 다 나오 라고 해서 도두국민학교, 현재 비료창고 자리에 다 모이라고 했죠. 그리곤 모인 사람들 도두국민학교 옛터. 왼쪽 농협창고 오른쪽 지점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