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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5 안덕면 터에서 총살됨 ※ 장진봉의 동생 장진병(27, 남)은 1948년 11월 24일 토벌대 에 총살됐고, 동생 장진선(19, 여)은 1949년 군법회의 판결을 받고 형무소 수감 중 한국전쟁이 발발해 행방불명됨 1월 27일: 상천리 돌오름에서 피신생활을 하던 김병민(26, 남)과 가족 강 원중(24, 여), 김병민의 딸(6, 여), 김병민의 아들(4, 남), 김팔석 (18, 여), 김평선(15, 여), 김평화(8, 여)가 토벌대에 발각돼 총 살됨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전국 경찰은 보도연맹원들을 검거하 기 시작했다. 제주도에서는 예비검속이란 다른 이름으로 주민들을 불법체포했다. 창천리에서는 오원립(57, 남)과 오형택(35, 남)이 검거돼 1950년 8월 20일 섯알 오름 탄약고터에서 학살됐다. (상·하모리–학살터–섯알오름 탄약고터, 참조) 마을 축성은 1948년 12월부터 시작됐다. 당시 상창과 상천에서 소개와 살던 사 람들도 창전주민들과 같이 축성에 나섰다. 축성 후 창천에는 경찰파견소도 설치 됐다. 현재까지 정부가 인정한 창천리 4·3희생자는 모두 74명(남성 56명, 여성 18명) 이다. 1) 창천리 4·3성 창천리 4·3성은 1948년 12월 무장대의 두 차례 습격 후 쌓기 시작했다. 축성 작업에는 창천주민뿐 아니라 안덕면 지역 주민들도 동원돼 한 달이 채 안 되는 단 기간에 완공됐다. 성은 창천교에서 창고천을 따라 북쪽으로 양아리쿰까지 이어진 뒤 서쪽으로 방향을 바꿔 섯가름집 뒷담, 옛 변전소, 뒷동산, 사리왓을 지나 감산 리 4·3성과 연결됐다. 마을 남쪽에는 창고천이 있었고, 서쪽은 감산리와 성이 연 결됐기에 별도로 쌓지 않았다. 대신 남쪽과 서쪽에는 길목마다 초소를 설치해 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