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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화북 주민들은 1949년 1월 7일, 화북지서에서 제주경찰서로 이송되어 유치되었다 가 이런 변을 당한 것이다. 이곳으로 연행된 사람들은 스리쿼터 2대에 태워져 왔는데 옷을 발가벗긴 채 파놓은 구덩이 속에서 철창으로 피살당하다가 나중에는 총으로 사살 됐다고 한다. 도두지서(당시 주임 김영철)의 순경들은 시범을 보이며, ‘여기에 잡아온 사람들은 도 두리를 습격했던 폭도들’이라며 도두 청년(도두리 대동청년단원이라는 증언도 있음)들 에게 직접 사살하라고 주문하기도 했다는 것. 도두 청년들은 이 말을 듣지 않으면 신변 에 위협이 생길 것으로 느껴 이런 행위를 대행했다고 한다. 당시 14살이었던 한 증언자는 반장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삽이나 곡괭이를 가지고 나오라고 하기에 나가서 오전 내내 주민들과 같이 구덩이를 파내 거대한 사형집행장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 당시는 시체도 수습하지 못하게 하여 3~4개월 후에야 수습하게 되었는데, 부패하고 옷들을 발가벗긴 상태라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이날 도두리 특공대원으로 현장에서 학살극에 참여했던 김희천(2003년 75세, 남)은 어쩔 수 없이 자신들이 그 자리에 서게 된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그날 우리를 집합시켜 놓고 구덩이를 파라고 지시했어요. 도두 남문 밖인데…. 우린 큰 구덩이 두 개를 팠죠. 도두리를 습격했던 산폭도 100명을 잡아 왔다고 했어요. 주민 들은 나와서 구경하라고 하고요. 차 2~3대로 사람들을 실어왔어요. 보니까 여자도 있 고, 남자도 있는데 다들 옷을 벗으라고 했어요. 그런 다음 뒤에 군인들이 총을 들이대 고 있는 상황에서 특공대원들에게 찌르라고 명령했죠. 도두지서 주임이 명령한 것이 아니라 이날은 제주경찰서에서 직접 왔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습격 왔던 산폭도들이 아니고 제주경찰서 유치장에 있던 사람들 이라고 해요. 죽는 사람들 중에는 살려줄까 봐 대한민국 만세를 부르는 사람도 있었고, 인민공화국 만세를 부르는 사람도 있었죠. … 사람들 옷을 다 벗긴 다음 구덩이에 들어가라고 했어요. 우린 구덩이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찔렀죠. 안 찌를 수가 없었어요. 우리 중 한 사람이 뒤로 주춤주춤 물러서려 했어요. 그러자 경찰이 당장 죽일 듯이 달려들자 그 사람도 어쩔 수 없이 죽창을 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