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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學部參書李公敏應紀念碑(전 학부참서 이공민응 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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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응 선생의 비석들이 친일 논란 및 비판을 받는 이유는 일제강점기 당시 그가 수행했던 조선총독부 산하 기관 활동과 상훈(포상) 이력 때문입니다 1. 조선총독부의 은배(銀盃) 수령 이민응 선생은 1920년대 여주와 이천 지역에서 식산조합과 선린회 등을 조직하여 이끈 공로를 인정받아, 1928년 7월 조선총독부 정무총감 이케가미 시로(池上四郎)로부터 은배(銀盃, 은잔)를 수령했습니다. 조선총독부가 공식적으로 수여한 은배나 포상은 일제의 식민 통치 정책에 적극적으로 협조했거나, 일제가 추진하는 농촌·경제 통제 정책에 기여한 인물에게 주어지는 대표적인 상훈이므로 친일 행적의 주요 증거로 지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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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식산조합(殖產組合) 활동 그는 일제강점기 지역 금융 및 농촌 통제 기구였던 '식산조합'의 결성과 운영에 깊이 관여했습니다. 식산조합은 표면적으로는 농촌 진흥과 저리 자금 융통을 내세웠으나, 실질적으로는 조선총독부의 식민지 농업 정책(산미증식계획 등)을 하부에서 집행하고 조선 농민들의 노동력과 생산물을 효율적으로 수탈하기 위해 활용된 관제 기구였습니다. 이러한 식산조합의 간부나 핵심 발기인으로 활동한 이력은 전형적인 부일(附日) 행위로 분류됩니다. 3. 일제 관제 행사 및 기부 협조 그가 사재를 털어 행한 많은 기부 활동 중 일부는 일제의 행정 체계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예컨대 1922년 일제 행정 관청인 흥천면사무소 신축을 위해 3,000여 원의 거액을 독단 부담하여 기부하는 등, 일제 식민 통치 기구의 인프라를 확충하는 데 협조한 면이 비판적으로 검토됩니다. 출처 : 세종신문, 경기도메모리 디지털아카이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