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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운동의 전개 제2차 봉기 동학군의 해산에도 불구하고 1차 봉기를 빌미로 조선에 입성한 일본군은 내정 간섭을 강화였고 6월 2일 김홍집을 앞세운 친일내각을 설립하여 조선정부에 내정개혁을 강요하였다. 이어 6월 21일에는 경복궁에 침입하여 고종을 감금하고, 23일 청일전쟁을 일으킨 후, 25일 1차 갑오개혁을 강행하였다. 이러한 일본의 행태를 전해들은 전봉준은 일본군 척결을 위해 김학진과 손을 잡고 제2차 기병을 준비, 9월 18일 삼례에서 집결(제2차 심례봉기)하여 서울로 향했고, 이는 반일 감정이 쌓여 있던 충청도, 경상도, 강원도 등 전국적 항일운동으로 확산되었다. 민중봉기가 확산되자 정부는 군을 출병시키고 일본에 출병을 요청하여 동학농민군을 진압하도록 하였다. 동학농민군은 치열한 접전끝에, 우세한 화력을 앞세운 일본의 개입으로 고전하다 우금치전투에서 관군과 일본군에게 패했다. 이후 1895년 1월 전봉준에 이어 손화중 등 동학농민 지도부 대부분이 제포되고 교수형에 처해져 동학농민혁명은 실패로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