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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7 안덕면 시 이곳에는 도피자 가족으로 낙인찍힌 양남학과 양경하, 양하석 가족들을 포함 한 6~7명의 가족들이 수용됐었다. 이곳에 수용된 사람들은 일체 외출이 금지됐 고, 걸핏하면 수상한 행동을 한다며 끌려가 매타작을 당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 도 이곳에 수용됐다 학살된 사람은 없었다. 이곳은 4·3 후 양하석의 동생이 살았 으나 현재 집은 모두 헐리고 과수원으로 개간됐다. 다. 현황 옛 흔적은 찾아 볼 수 없다. 당시 집은 헐리고 모두 과수원으로 개간됐다. 도피 자 가족 수용소 옛터 동쪽에는 펜션(라 메르La mer)이 있다. 4) 주둔지 ① 안덕지서 옛터 가. 소재지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로 56번길 32 (화순리 1290번지) 안덕초등학교 안 나. 개요 안덕지서는 일제강점기인 1915년 안덕경찰관 주재소 명칭으로 처음 설치됐다. 그 후 1946년 12월 제주감찰청 제2구경찰서 안덕지서로 개칭되고 안덕면을 관 할했다. 4·3 시기에는 고덕진(작고)이 주임으로 김태수, 고덕흥 형제들이 지서에 근무했다. 무장대가 1948년 11월 5일, 화순리를 재차 습격했다. 그러자 지서에서는 안덕 면 주민들을 동원해 지서 둘레에 성을 쌓기 시작했다. 안덕면 관내 11개 마을 주 민들은 자기 마을에 할당된 날짜에 나가서 부역을 해야 했는데 이렇게 부역 갔던 주민 중에는 명단에 따라 호명된 후 총살돼 돌아가지 못한 사람들도 많았다. 안덕 면 마을 중 사계주민들 희생이 가장 컸다. 사계 청년들은 습격 뒷날인 11월 6일 출력명령을 받아 축성작업에 나갔었다. 이날 10여 명 정도가 불려나갔는데 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