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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5 제주읍 월 1일 무장대 습격 후 토벌대는 무장대 가족이라며 주민 14명을 도두리의 동박 곶홈과 오래물깍에서 총살했다. 또한 1월 12일과 14일에는 토벌대가 ‘남편이 없 다’는 이유로 주민 50여 명을 집단학살했다. 이때에는 주로 도두2구인 몰레물이 나 다호마을 주민들이 희생됐다. 그리고 1월 하순께, 제주비행장에 주둔하고 있 던 토벌대가 다호마을을 기습하여 15세 전후의 청소년 20~30명을 구 제주비행 장 정문 안 동쪽 소나무밭으로 끌고가 학살했다. 이들은 당시 다호, 연동, 오라3 리, 노형의 다랑굿마을 출신들로 부모들이 도피하면서 데려가지 않아 다호마을에 임시로 거처하던 청소년이었다. (용담리-학살터-구 제주비행장 정문 안 동쪽 소 나무밭, 참조) 4·3 시기 군경토벌대의 지휘통제권은 미국이 가지고 있었다. 이런 미군이 제주 도에서 벌어지는 토벌대의 집단학살을 지휘하거나 통제했는지, 아니면 방관하거 나 전혀 몰랐는지 하는 사실은 자료가 없어 규명이 어렵다. 그런데 이런 미군측이 1949년 2월 20일 도두리 속칭 궤동산 동녘밭에서 벌어진 주민 76명의 학살사건 에 대해서는 이례적으로 현장을 목격했다면서 정확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1 한편 다호마을은 무장대가 습격해 웃동네를 불태우자 아랫동네로 소개했다. 주 민들은 당시 제주비행장 정문 앞에 움막을 지어서 집단생활했다. 이런 와중에 도 두지서에서는 3~4차례 다호마을을 기습해 주민들을 연행해 갔다. 그 후 연행된 주민들은 도두1구 동박곶홈에서 학살됐다. 1949년 이후 도두리에서 벌어진 대표적인 학살사건은 다음과 같다. 1949년 1월 1일: 강명언(50, 남) 등 9명이 도두리를 습격한 무장대에 피살됨. 토 벌대는 강치권(28, 여) 등 10명을 동박곶홈에서, 박령순(16, 여) 등 4명을 오래물깍에서 총살함 (도두리-학살터-동박곶홈· 오래물깍, 참조) 1월 8일: 토벌대가 강여명(27, 남) 부녀 등 20명을 동박곶홈에서, 장운 령(72, 남) 등 8명을 도령마루에서 총살함 (용담리-학살터-도 령마루, 참조) 1) 주한미육군사령부, 『정보일지』(1949. 3. 2.), 도두리의 학살터, 궤동산 동녘밧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