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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4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1947년 3월 1일: 박재옥(23, 여)은 관덕정 광장에서 3·1절 기념대회 시위행렬을 구경하던 중 경찰의 총격으로 현장에서 사망했고, 품에 안고 있 던 아들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함 1948년 5월 10일: 김용조(23, 남, 대청단원), 문부옥(21, 여), 정방옥(32, 남, 대청 단장)이 무장대에 납치돼 연동리 상여오름 부근에서 피살됨 5월 14일: 김상옥(44, 남, 선거관리위원), 김택훈(25, 남, 김상옥의 아들, 대청단원), 김해만(55, 남, 도두리 선거관리위원장)이 무장대에 납치돼 연동리 상여오름 부근에서 피살됨 5월 18일: 고정달(56, 여)을 비롯한 5명이 무장대에 납치돼 노형리 눈오 름 부근에서 피살됨 5월 21일: 문성희(26, 여)는 오빠가 경찰이라는 이유로 무장대에 납치돼 궤동산에서 피살됨 그러던 5월 20일, 지금까지와는 달리 서북청년회가 마을을 기습해 신사수동 앞 바다에서 낚시하던 강대섭(33, 남)과 강희섭(23, 남) 등 5명을 도두봉에서 학살하 고, 마을 여기저기서 김덕현(37, 남) 등 4명을 학살했다. 이 사건 후 청년들은 대 거 산으로 도피했다. 그 후 1948년 11월 중순, 중산간 마을이 소개되어 소개민들이 도두 등지 해안 마을로 소개 올 즈음까지 사건은 뜸해졌다. 다시 학살사건이 시작된 것은 1948 년 11월 8일이었다. 이날, 고한재(27, 남) 등 6명이 토벌대에 연행돼 화북천변에 서 학살됐고, 1948년 12월 1일에는 강문평(21, 남) 등 7명이 도두국민학교로 모 이라고 해서 나갔다가 굴왓(동박곶홈 부근)으로 끌려가 총살됐다. 이 무렵 마을에 남은 청년들은 특공대를 조직했다. 그리고 1948년 말께 설치된 도두지서에서 경 찰 보조원 등으로 일하며 토벌대에 협조했다. 이들은 당시 공회당(현재 마을문고 자리)에 성을 별도로 두르고 사무실로 이용했다. 1949년에 들어서자 무장대와 토벌대 양측에 의한 학살사건이 더 자주 벌어졌 다. 무장대는 1949년 1월 1일, 도두리를 기습해 학교는 물론 개인집에 불을 지르 고 보초를 서던 주민과 공무원 부모인 노부부를 학살했다. 2월 18일에도 무장대 는 도두리를 기습해 주민들을 학살했다. 곧 토벌대의 보복이 이어졌다. 1949년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