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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2 제주4·3유적 Ⅱ _ 서귀포시편 알 수 없다. 이날 벌어진 두 주민 학살사건은 화순리 주민이 희생된 첫 학살사건 이었다. 그 후 신사터에서는 토벌대가 주로 소개민들을 도피자 가족이라거나 무장대에 협조했다며 끌고와 학살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희생자는 다음과 같다. 1948년 11월 16일 (5명): 창천리 – 김태규(26, 남)·김운규(15, 남) 형제, 오승봉(26, 남), 오진옥(29, 남), 차권희(23, 남) 11월 25일 (7명): 감산리 – 강신생(28, 남), 고남룡(22, 남), 유치룡(27, 남), 이완진 (27, 남) / 창천리 – 김만성(20, 남), 오익남(26, 남), 진상오(19, 남) 12월 3일 (5명): 서광리 – 고원종(29, 남), 박창오(25, 남), 박창희(28, 남), 차재옥(24, 남), 송상운 (18, 남) 12월 5일 (5명): 감산리 – 고인득(22, 남), 박경권(16, 남), 박인권(27, 남), 오창욱(19, 남), 유흥룡(22, 남) 1949년 1월 8일 (8명): 상창리 – 김달종(53, 남), 이신생(48, 여), 김원봉(17, 남) 일 가족, 강상수(20, 남) / 창천리 – 장공수(62, 남)·장진영(16, 여)·김춘지(38, 여)·장동옥(15, 여) 일가족 4명 신사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