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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제주4·3유적 Ⅱ _ 서귀포시편 포에는 주민들을 수용했던 수용소가 여러 군데 있었다. 서귀리는 무장대로부터 대대적인 습격을 받기도 했다. 1948년 11월 7일, 서귀 리를 기습한 무장대는 민가를 방화하고 경찰 1명과 민간인 7명을 살해했다. 이에 토벌대는 퇴각하는 무장대를 쫓아 서홍리를 비롯한 동홍리, 토평리 등 서귀포 산 간지역을 수색하며 중산간 마을 주민들을 학살하기도 했다. 국제신문(1948년 11 월 14일 기사)은 이 사건을 다음과 같이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지난 7일 남제주군 서귀포 시내에 잠복하였던 폭도 중 5명이 서귀포 발전소를 습격 하였는데, 그때 동 발전소는 국군 제○중대 소속 권천석(權千石) 하사 1명이 수비하고 있다가 단신으로, 내습하여온 5명의 무장폭도를 상대로 용감하게 싸우다가 다리에 부 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분투하여 폭도 2명을 사살하고 그 무기를 압수하고 나 머지 적을 격퇴시켰다 한다. 권 하사의 분투의 결과 발전소에는 아무 피해도 없다. 국 군 당국에서는 동 하사의 용감한 행동을 표창하리라 한다. 또 동일 서귀포 시내에는 방 화로 인하여 민가 81호가 소실되었으나 관공서를 비롯한 주요 건물은 군경의 신속한 노력으로 하등의 피해도 입지 않았었다.” 서귀리에서는 지역 유지들도 많이 희생됐는데 송문희(43, 남) 서귀면장과 강성 모(44, 남) 면장이 군부대에 검거돼 학살됐다. 서귀리 주민들은 4·3을 겪으면서 서귀포에 주둔했던 토벌대, 특히 서청에 많은 피해를 입었다. 또한 주민들은 정방 폭포의 소남머리 등지에서 매일같이 주민들이 학살되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고통 을 겪기도 했다. 다음은 서귀리의 주요 주민학살사건이다. 1948년 11월 7일: 무장대가 습격해 고윤선(46, 남)과 김두형(28, 남), 김태권(27, 남), 송성진(16, 남), 양기찬(16, 남), 오수인(38, 남), 임축생 (22, 남) 7명을 살해함 11월 11일: 강보신(20, 남)을 비롯한 김병수(20, 남), 서순길(23, 남), 송두 원(31, 남), 신두필(24, 남), 오병욱(30, 남), 원대옥(33, 남) 7명 이 토벌대에 의해 동홍리 정무시 동산에서 학살됨 12월 14일: 고송향(39, 여)을 비롯한 송남인(18, 남), 신연비(37, 여), 이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