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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의 삶과 죽음 동지는 대구 지역 부호 집안 출신으로,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 문리 대 정치학과에 입학하였다. 대학 시절 서울대 문리대 이념써클인‘신진회’의 핵 심인물로, 4월 항쟁 이후 학생운동을 비밀리에 지도한 지도부 중 한 사람이었다. 동지는 ’64년「청맥」지 활동을 시작하면서, 통혁당과 관계를 맺기 시작하였다. 조직이 활성화 되어 동지는 형식상 김질락과의 불화로 청맥을 그만두었다. 동지 는 조직을 확대하기 위하여 ’65년 학사주점을 인수하여 운영하였다. 당시 학사주 점은 수많은 젊은 지식인과 민족주의자들이 모여 논의하는 공간이었다. 이후 동 지는‘68년 통혁당사건 으로 구속되어 사형을 언도받고 ’69년 11월 4일 사형 집 행되었다. 박정희 정권은 대중의 통일열망을 잠재우고 자신의 정권 유지를 위해 만들어 낸‘선건설 후통일론’이외의 다른 모든 정책이나 활동은 철저하게 통제하였다. 합리적인 통일방안의 제시나 통일의 발판을 마련하고자 하는 노력들은 모두 반 공법으로 다스려졌다. ’68년에 중앙정보부에 의해 발표된 소위‘통일혁명당’사건은 서울시당 책임 자 김종태, 민족해방전선 책임 김질락, 조국해방전선 책임 이문규, 전남도당 창 당준비위원장 최영도 등 총 158명이 검거되어 50명의 구속자를 낸 ’60년대 최대 의 지하혁명당 조직사건이었다. 이 사건의 진실에 대하여 많은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과연 이들이 비록 북한과 연계되었다고 사형되어야만 했는가? 등 많이 논란이 되고 있다. 무엇보다 이들은 한국전쟁으로 인해 단절된 전통적 통일운동, 즉 남북을 포괄 하여 전국적 차원에서 혁명적 당 역량을 건설하여 외세와 매판세력을 축출하고 조국의 통일을 이룬다는 전통적 운동의 맥을 남한 내에서 복원시키려는 운동이 었다. 끝내살리라 |67| 이문규(나이미상) 신의주 출생 경북고등학교 서울대 문리대 정치학과‘신진회’핵심 맴버 공군장교 정훈감실 근무 1964년 8월 「청맥」주간 1965년 학사주점 운영 1968년 통혁당 사건으로 구속 1969년 11월 4일 사형집행 |66|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박정희정권 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