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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0 제주4·3유적 Ⅱ _ 서귀포시편 “소개 와서 일주일쯤 지난 때로 생각돼요. 서광 사람들을 화순국민학교에 다 모이라 고 했어요. 아마 200~300명은 모였던 것 같아요. 토벌대가 모두 눈감으라고 한 후 이 름 부르는 사람은 나오라며 한 사람씩 불러냈죠. 그런 다음 토벌대는 호명된 사람은 지 서 안으로 들어가고 나머지는 돌아가라고 했어요. 그때 아버지도 불려갔죠. 제가 볼 때 50명이 넘었으니 18세 이상 60세 이하 남자들은 전부 다 불려간 것 같아요. 이 사람들 은 지서에 있는 물탱크에 갇혔어요. … 그런데 이 사람들 중 29명이 1948년 12월 1일 한꺼번에 죽었어요. 저는 토벌대가 총을 쏘는 것도 보았고, 사람들이 죽는 것도 봤어요. 6학년 때인데 학 교 청소를 하고 있었어요. 사람들이 쇠줄로 묶여가고 있었어요. 저는 ‘아, 데려가서 죽 이젠 헴구나!’ 해서 따라가 봤죠. 곧 다다다다 총소리가 났어요. 저는 겁이 나서 어머니 한테 알리려고 집으로 뛰어가는데 사람들이 쓰러진 것을… 그때는 담도 높지 않고 나 무들도 없어서 다 보였어요. 사람들이 죽은 데를 보니까 총 맞은 사람들이 탁탁 튀고, 손가락도 꼼지락꼼지락 움직이고 있었어요.” 이날, 고씨 부친은 지서장과 친했던 삼촌의 도움으로 총살에서 제외됐다. 1 이곳 에서 학살된 서광주민으로 현재 확인된 사람은 강희주(20, 남)를 비롯한, 고기정 (26, 남), 고달수(22, 남), 고사문(57, 남), 고상수(24, 남), 고성권(29, 남), 고성화 (26, 남), 고수형(22, 남), 고시종(25, 남), 고영해(39, 남), 고운종(20, 남), 고임길 (24, 남), 고창훈(25, 남), 고태윤(14, 남), 김관호(26, 남), 김두빈(24, 남), 김철석 (19, 남), 박달하(33, 남), 박태휴(30, 남), 송상운(18, 남), 송성관(21, 남), 송성호 (25, 남), 이도철(25, 남), 이상우(17, 남), 이상원(20, 남), 이찬민(19, 남), 이행옥 (17, 남), 조석진(26, 남), 현만송(39, 남), 홍순호(26, 남) 등 36명이다. 다. 현황 제남밧에는 과수원이 있었는데 지금은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옛 모습은 찾아 1) 화순리 강문팔은 이 사건 학살터를 안덕교회 서쪽 가원 지경이라 했다. 그러나 고보화는 가원 지경 은 시신을 옮겨 임시 가매장했던 곳이라 했다. 둘의 증언을 종합해볼 때 고씨의 지적이 옳은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