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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9 안덕면 현 등 6명이 전사했다. 무장대 측 피해는 확인되지 않는다. 그 뒤 이곳에는 전사 자들을 기리기 위한 충혼비 4기가 세워졌는데 현재 3기의 행방은 알 수 없고 1기 만 안덕면 충혼묘지(안덕면 동광리)로 옮겨진 것이 확인됐다. 이외에 개폭데기에서는 두 차례의 학살이 있었다. 1948년 10월 31일 아침, 상 창리 오상수(23, 남)와 감산리 유인철(27, 남), 이재아(33, 남)가 토벌대에 붙잡혀 이곳에서 학살됐다. 전날 밤 무장대가 도로차단을 했었는데 토벌대는 이날 이른 아침부터 일하는 세 사람을 발견하고 총살했던 것이다. 11월 22일에는 감산리 고 봉룡(27, 남)과 서광리 김두원(66, 남)·고용인(54, 여) 부부가 영문도 모른 채 총 살됐다. 다. 현황 개폭데기는 제주조각공원 입구에서 동쪽으로 약 250m 떨어져 있다. 일주서로 와 화순중앙로12번길이 만나는 지점으로 화순리 표석이 세워져 있다. ② 제남밧 가. 소재지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리 나. 개요 제남밧은 안덕교회 바로 서쪽에 위치해 있었다. 증언자에 따라서는 천주교회 앞 밭이라고도 불리는데 천주교화순교회에서는 남서쪽으로 약 120m 떨어져 있다. 이곳에서는 1948년 12월 1일, 화순리로 소개한 서광리 주민 30여 명이 학살됐 다. 서광주민들은 11월 중순께 소개명령을 받고 덕수리나 화순리로 소개했었다. 당시 이곳으로 소개한 사람들은 ‘소개하면 살 수 있다’고 믿었던 주민들이 대부분 이었다. 그러나 화순리로 소개했던 서광주민들은 며칠 후 뜻하지 않은 집합명령 을 받았다. 당시 화순국민학교 6학년에 재학 중이었던 고보화(2003년 70세, 남, 서광리 거 주)가 이 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