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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5 안덕면 는 혐의를 받고 안덕지서로 연행돼 고문을 받고 풀려났으나 강 정은 집에 돌아온 뒤 사망함. 박갑길도 후유증에 시달리다 4월 20일 사망함 4월 6일: 박갑송(27, 남)은 서문에서 보초를 서다 총격을 받고 사망함. 강문학(17, 남)과 임춘권(22, 남)은 망루에서 보초를 서며 떡을 먹다 발각됨. 임춘권은 현장에서 총살되고, 강문학은 안덕지서 로 연행돼 고문을 받은 뒤 후유증으로 사망함. 양봉호(30, 남) 는 보초근무 중 동생 양봉구를 찾는 대정지서 경찰에 연행돼 고 문을 받고 풀려났으나 후유증 겪음 5월 26일: 양경하(32, 남)와 양남학(23, 남), 양하석(27, 남)은 1948년 11 월 토벌대가 주민들을 연행해 학살하자 신변에 위협을 느끼고 피신함. 이들은 1949년 5월 26일, 황개천 인근 비지기정에서 토벌대에 발각됨. 이때 양남학은 현장에서 총살되고, 양경하와 양하석은 연행돼 군법회의에서 무기징역을 언도받음. 이들은 마포형무소 수감 중 한국전쟁이 발발한 뒤 행방불명됨 그 후 화순리에서 확인되는 인명피해는 없었다. 그러나 1950년 한국전쟁이 발 발하면서 예비검속 사태가 발생했다. 당시 화순에서는 예비검속으로 안덕국민학 교 교장 오동건(40, 남, 본적 토평리)과 교사 강성휴(25, 남, 본적 상창리)가 섯알 오름 탄약고터에서 학살됐다. 그리고 화순리에서 근무했던 안덕국민학교 교사 김 용준(25, 남, 하예리), 안덕고등공민학교 교사 이윤찬(20, 남, 덕수리), 안덕면사 무소 직원 양덕필(33, 남, 창천리)과 오형택(35, 남, 창천리)도 섯알오름 탄약고터 에서 학살됐다. (상·하모리–학살터–섯알오름 탄약고터, 참조) 현재까지 정부가 인정한 화순리 4·3희생자는 25명(남성 23명, 여성 2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