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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4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월평주민들은 소개지에서 어려운 시기를 보낸 후 1954년에 마을을 재건했다. 제주도의 다른 중산간 마을과 비교해도 아주 늦은 시기였다. 주민들은 성담을 쌓 으며 많은 고생을 했다. 마을회관에서 만난 한 할머니는 성담 쌓으러 나갈 남자가 없어서 15살에 자신도 성담을 쌓으러 다녔다고 아프게 과거를 기억했다. 월평리의 주요 주민 학살사건은 다음과 같다. 1948년 7월 25일: 김○○(30, 여)은 4·3이 일어나자 산으로 피신했다 이날 토벌대 에 붙잡혀 속칭 한모루에서 총살됨1 11월 11일: 토벌대가 마을을 급습하여 불지름. 항의하던 한인관(65, 남)을 비롯한 김금례(20, 여), 김재경(29, 남), 윤경문(76, 남) 등이 총 살됨. 이날 길안내를 했던 강규호(58, 남, 아라리)도 총살됨 1949년 1월 9일: 1월 7일 무장대가 화북지서를 습격하자 그 보복으로 토벌대는 동국민학교에서 소개생활을 하던 월평주민 강경봉(57, 남), 강 좌문(45, 남)을 도두리로 끌고가 총살함 1월 15일: 이기출(41, 여) 모녀를 비롯한 5명이 화북리 고우니모루에서 토벌대에 총살됨 현재 정부에서 인정한 월평동 4·3 희생자는 모두 80명(남성 64명, 여성 16명) 이다. 1) 잃어버린 마을 <웃동네> 가. 소재지 제주시 월평동 880번지 일대 1) 남편 김치옥(37, 남)은 형무소 수감 중 행방불명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