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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3 제주읍 18. 월평리 월평리는 제주읍 동부지역 중산간 마을로, 서쪽으로는 영평동, 동쪽으로는 용 강동을 경계로 하고 있다. 과거에는 다라쿳이라 하다가 지금은 월평(月坪)으로 불 린다. 6만여 평의 분지에 마을이 형성돼 있고, 농토는 경사지가 없이 평탄하다. 월 평마을 중심부에 위치한 벵뒤왓에서는 예전에 주로 곡식들이 산출됐으나 지금은 모두 과수원으로 변했다. 1962년 아라동에 편입되어 현재는 아라1·2동, 월평동, 오등동과 함께 아라동에 속한 법정동이다. 월평리는 4·3 시기 108가호에 480여 명의 주민이 살던 작은 마을이었다. 1948 년 11월 11일, 주민들은 마을이 초토화된 이후 화북, 광양 등지로 소개하거나 인 근 곶자왈인 문또왓이나 거림도로 피신했다. 그러나 화북으로 내려간 주민들 일 부는 1949년 1월 화북지서가 무장대의 습격을 받고 위험해지자 다시 고향마을 에 돌아와 인근 야산으로 피신하기도 했다. 1949년 2월 4일 동부8리 대토벌작전 이후 토벌이 강화되자 주민들은 더욱 깊은 산중인 물장오리와 쌀손장오리 인근 한모를 지경에 은신했다. 그러다 몇 달 후인 4월 은신처가 토벌대에 발각됐다. 당 시 일부 주민들은 현장에서 학살됐고, 30여 명은 신촌지서로 끌려가 주정공장에 수용됐다. 그 후 이들 중에는 목숨을 부지한 주민도 있으나 많은 사람들이 다른 지방 형무소로 이송돼 수감 중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행방불명됐다.